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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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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기억


BY 모퉁이 2006-03-20

 

화장대 서랍 하나는 온갖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오래된 증명사진 원본부터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엽서들이며

일 원짜리 오 원짜리 십 원짜리 동전도 몇 개씩 있다.

십 환이라고 찍힌 동전도  있고

동전이 나오기 전에 사용하던 십 원짜리 오백 원짜리

지폐도 있고 기념 화패도 몇 종류 있다.

오백 원짜리 동전 중에는 한시적으로 만들어 낸

몇 개는 제법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된다고 해서

혹시 남겨둔 동전이 해당되나 싶어 확인해 보니

그런 행운과는 친하지 않았다.

 

사진 필름이 담겨졌던 원통 속에 납색 일 원짜리 동전이

일 원의 가치만큼이나 가볍게 보였다.

동전을 모아둔 통에 엽전을 닮은 버스 토큰이 이방인처럼 섞여 있었다.

회수권이 먼저였나 토큰이 먼저였나.

직장에 다닐 때 한 달 회수권을 미리 구입해서

호치켓으로 묶어 놓고 하루에 두 장씩 떼어 쓰던 기억이 나니

토큰이 회수권 뒤에 나온 것인가 싶다.

일 원짜리 동전,회수권, 토큰,

기억에서 멀어져 있던 이름들을 화장대 서랍에서 찾아 냈다.

 

여덟살이 된 내 남자친구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8년이나 사귄 내 친구가 입학을 한다는데 뭘 선물하나..

책가방도 샀고,실내화도 샀고,어지간한 학용품은 다 준비되었다고 했다.

내가 늦었나 보다.그래도 뭘 하나 사주고 싶은데...

마트 학용품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내 초등학교 시절과는 비교가 안되는 건 당연할 터이고

내 아이들 초등학교 때와도 또다른 진열품들에 내 눈알이 뱅글뱅글 돈다.

한참 두고 쓸 수 있는 연필이랑 딱풀이랑 스케치북을 사다가

던지다시피 건네주고 오던 날, 내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을 생각했다.

필통,연필 세 자루,칼,지우개,책받침...거기까지 생각하다

그 많고 많은 학용품 진열대에서 한가지 찾지 못했던

책받침이 생각났다.

대개 한쪽 면에는 만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한쪽 면은 구구셈이 적혀 있던 책받침.

겨드랑이에 끼워 쓱쓱 문지르다 머리에 갖다 대면

머리카락이 쭈삣 서던 책받침.

요즘은 책받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찾지 못한 것인지 책받침을 본 기억도 오래된 듯 하다.

 

저녁에도 그다지 춥지 않아서 학교 운동장 걷기 시작한 첫 날.

해가 지고 어두운 시간임에도 축구하고 농구하는 학생들과

나처럼 운동장 밟기 하러 나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서너바퀴 걸었나..

새삼스럽게시리  운동장이 어딘가 허전하다 싶었다.

마주 보고 있는 축구 골대 두 개와 한쪽에 비켜 세워진 농구 골대 두 개,

또 다른 한 쪽에 핸드볼 골대 두 개가 운동장을 장식하듯 서 있었다.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빠졌지?

시이소? 그네? 정글짐?

그런건 초등학교에나 있겠지.그럼 뭐지?

아하~~그래..조회대가 없구나.

 

대개는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애국 조회를 했었다.

학생회장이 사회를 보고 국기에 대한 경례로 부터 시작하여

애국가를 부를 땐 음악 선생님이시거나 합창부의 고참 지휘자가

고장난 라디오에서 뽑아 내 재활용이라도 하는 듯한

안테나를 닮은 지휘봉을 들고 삼각형을 그리며 흔드는

박자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고,끝날 듯하다 다시 이어지고

마지막인듯 하다 한 번 더 하는 교장선생님의 길고 긴 훈시와

다짐을 듣고는,어떤 날은 각종 시상식까지 있어서

호명 당한 학생들은 그 높은 조회대에 올라 가

교장선생님께 상장을 전해 받고 한쪽 옆구리에 그 종이를 끼고

깍듯이 인사 한 후에 뒤로 돌아 전교생을 향하여 한 번 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조심스럽게 내려오던 그 당당한 조회대.

아무나 올라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었지.

여러명이 상을 받게 되면 대표자가 되어야만 올라 설 수 있던 조회대.

떨리는 기분으로 그 곳에 서 본 기억은 없다만

간혹 늦게까지 운동장에 남아서 놀 때는 마음대로 올라갈 수 있어서

몇 번 오르락 거려본 그 조회대.

그랬다.그 조회대가 없었다.

요즘 학교는 조회도 학생은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교무실에서 이원방송 하듯이 화상 조회를 한다니

조회대가 거기 있을 이유가 없겠구나.

바깥 조회가 길어지면 겨울엔 추워서 벌벌 떨고

여름엔 더워서 졸도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런 진풍경은 없겠구나.

 

잠시 다른 생각들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이들도 돌아가고 휑한 운동장 스탠드에는

빈 음료수 병 몇 개가 검은 밤바람에 간들거리며 위태로운 춤을 추고 있었다.

 

돌아보면 잊혀지고 사라진 그 무엇들이 참 많다.

세월의 변화에 밀려 사라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잠시나마 세월의 테옆을 거꾸로 돌려 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하는 것들.

눈 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저마다의 기억 속에 갇혀있는 보물 하나쯤 찾아 보는 것도

어느 한낮 나른한 봄볕 위에 내려놓을 여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