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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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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BY 모퉁이 2006-02-15

중.고등학교 교복값이 왠만한 양복값이라며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요즘

각종 메이커 교복을 신세대 연예인이 예쁘게 입고 나와

선을 보이고 있어 광고비 때문에 교복값이 비싸다고들 한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은 비싼만큼

값을 한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쨋거나 비싼 것은 사실이다.

얼굴도 없는 몸체 마네킹이 썰렁한 모습으로 입고 선 보이던

옛날의 교복사는 찾아 볼 수도 없게 되고

맞춤형이 아닌 기성복 시대가 와서 백화점에 가면

체형에 맞게 골라 입을 수 있는 교복시대인 것이다.

 

팔길이 허리둘레 치마길이를 일일이 줄자로 재어서

'가봉'이라는 것을 하고  '00교복사'라고 적힌 종이 가방에 담아

모시듯 챙겨 온 교복을 입어보고 또 입어보던 시절이

꿈처럼 흘러가버린 지금,교복 이야기가 심심찮은 것은

바야흐로 봄이 가깝고 새학기가 되어감 때문일까.

 

고향은 소도시여서 그당시만 해도 중.고등학교가 남녀 각각 두 곳이었고

공식적인 교복사가 두 곳이 있었다.

시내에 있는 'J교복사'와 학교 앞에 있는 'D교복사'가

그 대표적 교복사였는데  J 교복사는 옷맵씨가 좋았고

D 교복사는 수십년 전통으로 바느질이 꼼꼼하다는 정평이 나 있었다.

나는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J교복사를 원했지만

엄마는 뭐니해도 바느질이 좋아야 된다며 꼼꼼한 D 교복사를 선택했다.

 

두 교복사의 옷을 입고 서 있으면 단번에 비교가 되었다.

우선 원단이 서로 달라 표가 났고 같은 색감이라도 밝기가 달라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초코파이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 또 한 군데의 경쟁업체가 나타났다.

어느 양장점에서 학생들 교복을 맞추기 시작했다.

양장점이라 그런지 옷맵시는 돋보였지만 아무래도 선호도에서

떨어져서인지 그 양장점의 교복을 입은 학생의 숫자는 적었다.

드물게는 동네 맞춤집에서 맞춰 입은 학생들도 있었는데

역시 폼은 덜 났다.

체육복을 겸한 실내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역시

두 교복사와 주변 맞춤집의 옷을 쉽게 구분해낼수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어느정도 자란 몸이기도 하고

맵시에도 신경을 쓸 때라 1학년 이라도 교복을 몸에 맞게 입는다.

허리도 최대한 졸라매고 치마길이와 교복 카라에도 꽤 신경을 쓴다.

그런데 중학생은 좀 다르다.

교복은 3년을 입어야 하므로 앞으로 더 자랄 것을 예상해서

큼지막하게 맞춘다.

신입생은 얼굴에서도 티가 나기도 하지만 교복입은 모습만 봐도

학년을 대충 알 수가 있었다.

1학년은 대개가 옷이 헐렁하고 크다.

소매가 손등을 덮고 아랫단도 넉넉하게 들어가 뭉툭하다.

2학년은 그런대로 옷이 맞다.

성급하게 자란 나같은 아이는 벌써 치맛단을 약간 내려 입은 흔적이 있다.

3학년은 대부분 소매가 깡총하고 치마길이도 그렇고

바짓단은 끝까지 내려 다린 표시가 반질반질한다.

 

이렇게까지 입은 옷을 동생에게 물려주기까지 해야 했으니

빈곤의 노곤함이기도 했겠지만 그나마도 불평스럽게 여기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입은 옷은 어디다 처분을 했는지

엄마의 오래된 장농 속 어디에서도 내 낡은 교복 하나 찾을 수가 없어

몇 장 되지 않은 흑백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었다.

사진도 흑백이었지만 교복도 흑백일색이었네.

 

이제 두 아이가 다 교복을 벗었다.

내 흩어진 추억에 반하여 아이들의 교복을 남겨 놓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의 잦은 발령으로 아이들이 입학한 학교에서 졸업을 하지를 못했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교복이 각기 다른 두 벌이다.

어느 옷을 보관해야 하나..

 

마침 큰아이가 전학한 고등학교에 배정받은 작은 아이는

언니의 교복을 물려 입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는데

큰애보다 작은애의 몸집이며 키가 더 크는 바람에

결국 이 바람도 헛바람이 되어 1년 입은 새교복은

교복 물려입기가 한창이던 학교에 고스란히 물려주었다.

몇 장의 사진 말고는 손에 잡히는 추억이 없는 서운함에

한 벌 물려주고도 남은 교복은 잘 정리해서 배내저고리와 함께 보관하고 있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아이들이 내 나이 되고

내 손주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날이 오면

지금 나처럼 그 시절의 교복을 추억하며

맞지도 않는 허리를 꿰차보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 하려나.

내 아이에게 마음 속의 보물창고 하나 지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