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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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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언니


BY 모퉁이 2006-02-01

설명절이 지나고 열흘 후면 친정엄마 생신이다.

친정 멀리 이사를 오고부터는 명절은 건너뛰고 엄마 생신에 참석을 한다.

딸만 있는 엄마는 딸들이 다 시집가고 난 후에는 엄마 손으로 생신을 차려야 하기에

칠순을 계기로 딸들이 돌아가며 엄마 생신을 차리기로 했다.

엄마와 가까이 사는 막내부터 시작했는데 한차례씩 돌아가고

다시 돌아 이번엔 둘째 언니네 차례가 되었다.

 

사는 것이 다 고만고만 하다만 특히 둘째 언니네가 형편이 좀 어렵다.

수 년전부터 일손을 놓고 저렇게 세월타령을 하고 있는 둘째 형부가

엄마 눈에 곱게 보일리가 없다.없어도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형부의 행동은 항상 느리고 게을러서 그 때문에 고생하는 딸이 안스러워

속상하다보니 둘째사위에게 내뱉는 말투가 곱지만은 않으시다.

그래도 살 섞고 산 남편이라고 언니는 엄마의 그런 말투를 싫어한다.

그런 언니네가 이번 엄마 생신을 차려야 하는 차례가 되었으니

언니는 짐짓 부담스러울 듯하다.

설 쇠느라 힘들었을텐데 이내 닥친 엄마 생신이라 소심하고 외곬적인

형부 눈치까지 보지 않을까 내가 자꾸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형편이 좋지 않으니 관두라고 하면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주말에 내려오란다.

설에도 다녀가고 또 내려오려면 교통비며 도로에 뿌리는 돈도

만만찮을텐데 괜찮겠냐고 오히려 나를 걱정한다.

 

두 살 터울인 둘째 언니는 어릴때부터 일손이 빨랐다.

엄마가 안계시는 날이면 부엌 일도 척척해냈고

뒤마무리에 손이 가지 않도록 야무졌다.

손끝 야무진 것은 좋은데 복 중에 일복 많은 것은 좋지 않다고

평생 일을 달고 살아야 한다던 엄마 말씀이 씨가 되었는지

시집을 가서도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허름한 시댁을 윤기나게 쓸고 닦아 새집처럼 가꾸고 살았다.

외아들에 홀시어머니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무던히도 참고 살았다.

동생들 옷을 얻어다 입고 유행도 모르고 새 것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다.

새집을 장만하고 어느 정도 살만큼 되었어도 늘 모습은 허름했다.

나이보다 몇 살은 위로 보일만큼 늙어보이는 딸이 안스러운 엄마와

실갱이도 생겼다.결국 진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그렇게 사는 것도 니 팔자다.'

 

어릴 때부터 언니는 체구가 작았다.

언니라고 부르지도 않고 이름을 부르는 못된 동생이었다.

 항상 나에게 양보를 했었음에도 많이 싸웠고

처녀적에는 미니스커트에 향기 좋은 화장품에 약싹빠르게

메고 나간 가방에 먼저 신고간 신발때문에 나랑은 둘이

참 많이도 싸우고 눈 흘기며 컸다.

한 해 먼저 결혼을 했고 둘째 아이는 내가 두 달을 먼저 낳았는데

만삭의 몸으로 내 산후조리까지 도와준 언니다.

그 알뜰함으로 아기자기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제일 험하게 살고 있어

늘 마음이 에린다.

 

친정에 가는 가방에는 작은 언니에게 들려줄 옷가지가 몇 개 들었다.

이제는 입던 옷을 주기 싫다.싼 옷이라도 새 것을 주고 싶다.

형제들 중에 체구가 가장 작은 언니.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우내 내복없이는 못 산다는 언니.

도톰한 목티와 따뜻한 바지 하나 건네어야겠다.

이제는 멋도 좀 부리고 가꾸며 살았으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참견하면 내가 모르는 슬픔이 있을까봐

적당한 선에서 챙겨주고 싶다.

 

[언니!뭐해줄래?]

[응...그냥 밑반찬 몇가지 하고 찌게나 하고..그러지 뭐.]

[그래..적당히 해..]

[그래도 니 좋아하는 회는 좀 사야겠제?호호..]

언니의 바지런함이 묻어있는 밑반찬 맛이 벌써 입안에서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