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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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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BY 모퉁이 2005-12-19

아버지 기일에 보자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 챙겨놓은 가방을 들고 나선 걸음을 되돌렸다.

눈발은 핑계였고 왠지 모를 기운이 자꾸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거기다가 길 미끄러운데 먼길 삼가라는 작은 언니의 걱정을

덜어주는셈 치고 꾸렸던 짐을 다시 부렸다.

 

직장에 메인 몸이긴 하지만 조금만 애를 쓰면 낼 수 있는

휴가를 내지 못하는 남편이 서운하기도 했다.

자기 아버지 같았음 나 혼자 다녀오라 했을까.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아버지 제사에 참석치 못했다.

낮잠을 잤다.

눈은 감고 있었어도 머리속은 훤히 뜨고 있은 탓인지 눈을 뜨자

머리가 띵하니 아파왔다.

 

이박삼일 정도 걸릴 양이었기에 선심쓰듯 끓여놓았던 미역국을

하루만에 다 먹어버렸다.먹고 자고 또 먹고 잤다.

날씨가 무척 춥다.

종종대고 있을 엄마와 바지런한 둘째 언니가 손을 불어가며

제사 준비를 하고 있을 모습이 떠올랐다.

동생들 내외는 아무래도 저녁에나 도착할 것 같고

큰언니는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못 갈 것 같다고 했었다.

그래도 큰언닌데 아버지 기일에 자주 빠지는 것이 서운하다.

그 서운함을 알면서 내가 그 서운함을 더했으니  내가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말은 먼저 내뱉는게 아닌가보다.

 

결국 큰언니와 내가 참석을 못하고 세자매만 아버지를 만났을 테고

세 사위의 절을 받았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장인 제사를 지내는 사위들이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이던 막내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늦둥이인 막내는 아버지 제사때 마다 울어서 눈이 붓곤 하더니

이번엔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그 해는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무척이나

추웠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맹추위여서 부엌의 엄마는

그 소리를 잊지 않았을 테다.

'아이고 영감쟁이 죽어서도 날 이래 고생시키노..'

 

생전 술을 무척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결국 술에 지셨다.

예순 둘의 나이에 엄동설한에 큰딸 하나 여의고 딸 넷을

두고 가셨으니 엄마한테 원망 들을만 하셨지 뭐.

군불 떼면서도 '이누무 영감재이 추운데 잘 있능가' 하면서

행주자락을 훔치던 것은 군불 연기에 코가 매운게 아니고

그 미웁던 영감이 그리워 눈이 매웠던 게야.

 

저녁 늦게 넣은 전화선 너머로 왁자지껄 모인 가족들 소리가 넘쳤다.

긴 인사는 나누지 못하고 염치없는 안부만 전했다.

뒤척거린 새벽이 밝아왔다.

간 밤의 뒤척임을 눈치챈 남자가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른 아침 엄마 집 전화벨은 혼자 울어댔다.

골목길 비질을 하고 계시던지, 어제 저녁 적셔낸

행주를 삶아서 옥상 빨랫줄에 널고 계시던지,

이웃집 할머니 친구들 불러다 영감 잿밥 나누자고

어느댁 삽작문을 두들기고 계시나 보다.

지금은 엊저녁 다녀간 영감 영상 품으며

곤한 낮잠에 취해 있으려나.

전화는 잠시 미루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