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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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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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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BY 모퉁이 2005-12-06

"언니!전데요.지금 집에 있어요?"

"아니...집에 없어.."

"언제 오실건데요?"
"글쎄..며칠 걸릴래나."

"멀리 가셨구나..오시면 연락하세요."

"왜?뭐 주고 싶은거 있어?"

"호호호...그냥요.보고 싶어서요.'

친정에 가 있는 동안 걸려온 이웃 동생의 전화다.

서울에 눈이 살짝 내렸다고 메세지도 보내주었던 동생이다.

 

"아직도 안 왔어요?"

"으응...좀 나와 있어.일이 자꾸 생기네."

"아이참...그람 잘 놀다 오세요."

"....그래.집에 가믄 연락할께.잘 챙겨놔"

사촌시동생의 부음을 받고 병원 장례식장에 있는 동안

걸려온 전화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어 있다는

그 흔한 위로의 말을 뒤로 하고 모두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주 결석한 서예교실이 왠지 낯설다.

헬쓱해졌다며 안부를 묻는다.고단함이 보였나 보다.

 

욕실화가 찢어진 것을 안지가 언젠데 오늘은 꼭 마련해야겠다.

시장에 들러 욕실화를 한 켤레 사고 저녁 찬거리를 찾다가

썰어놓은 가래떡 한 봉지와 두부 한 모를 사들고 와서는

그대로 내던져 놓고 자리에 누웠다.

머리속이 아직 복잡하다.

 

딩동~

머리는 어지럽고 머리카락은 어수선하다.

대충 손가락 빗으로 빗어 올리고 우선 현관문 유리구멍으로 밖을 내다봤다.

아무도 없다. 잘 못 눌렀나 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이번엔 아예 현관문을 손으로 두들긴다.

"이모~"

누구냐고 묻기도 전에 먼저 부른다.

언제 오냐고 그렇게도 물어대던 아우네 작은 아들 놈이다.

이 놈은 내 남자 친구이기도 하다.

아주 이뿌고 귀엽게 생겼다.

 

두 손으로 힘들게 쥐고 있는 하얀 비닐봉지 하나가 부스럭 거린다.

"뭐야?"

무 세 개,청국장 한 덩어리,비지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이걸 주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을 했었나 보다.

들어 오라고 하지 않아도 녀석은 벌써 거실 안에 서 있다.

사탕이 어디에 있는지 훤히 알고 있는 녀석이다.

엊그제 아주버님 잠바를 사러 갔다가 가게 오픈기념으로 준

막대 사탕이 있었고,이 녀석을 위한 알사탕 몇 개가 유효기간을 남겨 놓고 있었다.

"이건 형하고 나눠 먹고,이건 하나 밖에 없으니 어쩌나..

형하고 싸우지 말고 먹어라."

"네에~"

 

일어난 김에 저녁 쌀이나 씻어 놓자.

수돗물 소리에 묻힌 또 다른 소리는 대놓고 두들겨 대는 현관문 타작소리다.

밖에서는 바싹 마른 낙엽 바스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모~이거요"

"이건 또 뭐냐?"

"배추요"

"에구..."

 

신문지에 야무지게 싼 쌈배추 한 포기다.

아우는 김장을 친정에서 해오는데

이번 친정 길에 싣고 온 것들인가 보다.

값으로 치자면 저것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나누어 주고 싶어하는 그 마음은 값을 매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행복은 늘 작은 것에서 크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