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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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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농군(11)


BY 모퉁이 2005-11-21

 

농사라고는 'ㄴ'자도 모르는 부부가 올 봄에

주말농장을 신청했다고 하자 누구는 그것이

만만히 볼 일이 아니라며 지레 겁을 주었고

누구는 사 먹는 것이 싸다며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농장 개장이 되면서 얼었던 땅에 새 기운이 돋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 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떤 이는 마침내 불어닥친 웰빙시대에 유기농 채소를 맛보기 위해서,

일일이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시작한 의도는 여러가지일테다.

우리는 막연히 정년후에 뭘 할까 걱정하다가,기회가 된다면

작은 텃밭을 가꿀수 있는 집에서 살게 될때 이 경험도 없는 것 보다

나을 것 같다는 단순하지만 딴에는 깊은 뜻이 있어서 시작했던 것이다.

 

4월에 뿌린 열무와 각종 쌈야채는 대성공이었다.

그동안 얻기만 했지 나누지 못했던 이웃들에게도

좋은 인심거리가 되어 주었고,내가 직접 기른 채소들로

일주일 내내 입에서 풀내가 나도록 먹어도 아삭거리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비가 안와도 걱정,심어 놓은 씨앗을

비둘기가 쪼아 먹어 싹이 트지 않았을 때와 애써 지은 고추가

병들어 수확을 하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 지식없이 시작한

농사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농장주인이 일러주는대로

씨앗 뿌리고 웃거름하고 퇴비주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서인지

올해 마지막 농사인 김장배추 역시 작황이 좋았다.

 

배추 모종을 하던 날,서너잎 나온 배추 모종을 심으면서

이 배추가 과연 잘 자라주어 김장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한 주 한 주 다르게 자란 배추는 속이 차기 시작했고

하라는대로 끈으로 허리를 묶어 주고 드디어 수확을 할 시기가 되었다.

 

중국산 김치파동으로 김장을 하겠다는 가구수가 늘어났고

배추값이 금값이라는 보도에도 나는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고추,마늘,젓갈,소금 준비가 되었으니 김장 날짜만 잡으면 되었다.

입동이 지나면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갑자기 추위가 닥치면 애써 지은 농작물이 얼어서 못쓰게 된다고 한다.

농작물 냉해를 막기 위한 대책이 없는 우리로서는 적기에 수확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11월 둘째주가 수확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그때는남편이 출장 중이라 수확을 미루어야 했다.

그리고는 3주째 날씨가 쌀쌀해졌다.

배추밭이 궁금하고 걱정되고,다 된 농사 망쳐 땅을 치던 농부님들이

내 모습처럼 다가와 심란스러웠다.

운전면허 11년차 왕초보의 비애를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운전만 능숙하게 잘 한다면 남편없이도 까짓거

배추뽑아 싣고 오는 일쯤이야..아휴..바부탱이..

 

11월 세째주 토요일 아침.

느긋해도 될 주말아침이 바빴다.

새벽밥처럼 챙겨먹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굳게 닫힌 철장문 너머로 제일 먼저 우리 밭을 찾았다.

하얀 서리가 배추 머리에 앉아 백발 노인처럼 보인다.

이미 수확한 빈 밭이 더러 보였고,냉해를 막기 위해

비닐로 보호해 놓은 밭도 있었고,우리처럼 대책없는

밭이 태반이긴 했는데 그것보다 지난 밤에 낮은 기온으로

배추가 거의 살짝 얼었기 때문에 오후 햇살이 퍼져

배추잎이 녹기 전에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밭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되돌아 왔다가 다시 가는 헤프닝을

겪고는 배추 거둠을 마지막으로 올해 농사를 마쳤다.

포기가 한아름은 됨직한 실한 배추를 보고는

별로 도움이 되지도 못했던 남편도 꽤 흡족한 표정이다.

마침 시작된 주 5일 근무로 일주일에 이틀을 쉬면 이까짓거 못하랴 싶었겠지만

쉬면 쉬는대로 일이 생기고 나름대로의 생활에 쫒기기도 하고

농장과의 거리가 있다 보니  말처럼 생각처럼 그것이 그리 쉬운 노릇만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노력한 만큼의 댓가는 얻는다지만 꼭 그렇지만 않은 것이

또 이 농삿일이기도 하다.원하지 않은 기상 조건도 그렇고

'지금 못하면 나중에...'했다가는 낭패를 보기도 한다.

적기에 심고 거두는 일이 가장 기본이면서도 우리같은

초보농군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배추를 싣고오자 이웃 몇이 무척 부러운 눈빛이다.

부러움을 온 몸으로 받으며 어제는 김장을 끝냈다.

일찌거니 거들마고 들이 닥친 극성팬(?)들 때문에

올 김장은 어느해 보다 훈훈하고 보람되었다.

쌈배추 하라고 한 통씩 주고,생굴로 버무린 속배추와

따뜻한 보쌈 한 조각에 막걸리 한 잔 ,무청 시래기넣고

국물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는 김장 뒤풀이로 최고였다.

거기다가  어릴적 김장하던 날과 메주 쑤던 날의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깊은 양념이었다.

 

준비했던 호미와 챙 넓은 모자와 뿌리고 남은 씨앗들.

잘 보관했다가 내년 봄에 또한번 기지개를 같이 키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한번 농군일지를 그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