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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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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한 박스,콩 한 봉지


BY 모퉁이 2005-11-07

딩동~~

늦은 저녁에 벨이 울렸다.

낯선 아저씨 앞에 네모난 박스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고구마네요' 하시며 사인을 하라고 하신다.

 

내 30년지기 친구가 보내온 고구마였다.

농사도 없는 친구가 작년에 이어 올해 또 고구마를 보내왔다.

잘 아는 집에 부탁해서 골라 보낸 고구마라는데

때깔도 곱고 크기는 쌍동이같이 고르다.

 

늦은 시간이라 전화대신 문자메시지로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고

고구마 박스를 열어보니 한쪽 구석에 야무지게 싸맨 

콩 한 봉지가 들어 있었다.

지난번에는 말린 표고를 넣어 보내더니 이젠 콩이다.

친정에서도 이런 물건 한 번 받아보지 못했는데

마음씀이가 꼭 언니같고 엄마같다.

 

이 친구는 5년 전에 생사를 가르는 대수술을 받았다.

동생 간을 이식받아 지금은 건강한 몸이긴 하지만

꾸준한 관리와 검사를 필요로 해서

지난 주에는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서울에 왔었다.

10여분의 검사를 위해 일박이일을 투자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건강해졌다는 소식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남편의 특별배려(?)로 지난 금요일은 공식적인 외박을 했다.

찜질방을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친구의 말에 숙박을 찜질방에서

하기로 하고 속옷만 철저히 챙겨 나갔건만 아무래도 사람많은

찜질방 보다 오붓한 잠자리가 낫겠다 싶어 병원 근처 모텔에 들었다.

방학중에 올라올 때면 딸을 대동하는데 그때 묵은 방이라 했다.

혼자 들기는 왠지 어색한 곳이지만 둘이어서 그런대로 괜찮았다.

 

편한 옷을 챙기지 못했기에 둘은 속옷바람으로 누웠다.

예전에는 목욕탕에도 같이 다녀서 서로 몸매 구경도 했건만

결혼하고는 딱 한 번 온천을 다녀오고는 그 후의 맨몸은 보지를 못했는데

비키니수준의 몸을 드러내놓고 앉았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쪼그라진 가슴이며 늘어진 뱃살이 지나간 세월을 가늠하게 하던 것을..

 

검사결과는 좋았고 청계천 구경을 하고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비빔밥을 먹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간 이야기에서 어제 이야기까지

웃다가 울컥했다가 그립다가 간혹은 잊고 싶은 것들로 뒤범벅된

 세월 뭉치 하나씩을 꺼냈다가 다시 접어 넣었다.

10년이고 20년 뒤에 또 그리워질 하루를 더 채우면서...

 

고구마 박스에 담긴 친구의 마음만큼이나 동그란 고구마와 콩 봉지 속에서

30년 전의 단발머리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다.

가을 바람에 내 작은 소망하나 실려 보내고 싶다.

늘..언제나 건강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