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30분,집 앞 재활용 분리장 앞에서 앞동 아줌마랑
만나 등산을 가기로 했다.
등산화 끈을 질끈 매고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데 현관 앞이 허옇다.
쌀이다.
[으메 아까운거..]이건 두번째 생각이고 먼저 누가 흘렸는지 괘씸하다.
누군가 보내준 쌀이거나 돈을 주고 샀을텐데
흘린 것은 아깝지만 얼른 쓸어 흔적을 없애야 할 게 아닌가.
약속한 시간이 있어서 쓸지 못하고 나갔다.
좋은 마음으로 산에 다녀오니 현관 앞이 여태 그대로다.
은근히 화가 솟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도 아니고 그 사이 여러 사람이 오갔을텐데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인지 보고도 못 본 척 한 것인지.차암..
하필이면 우리집 앞에서 부터 내려가는 계단까지 쏟아져 있던
쌀이 이제는 밟아서 자잘해졌다.
4층건물에 우리는 2층에 산다.
두 가구가 나란히 살지만 옆집과는 별 왕래가 없이 산다.
돌 지난 아기와 유치원생을 키우는 집이라 나랑 나눌 대화가 거의 없다.
3층에 나란한 두 엄마는 나랑 연배가 비슷하긴 하나
그 역시 자주 만날 기회가 없다.
현관문을 열어놓고 궁시렁 거리고 있는데 3층에 두 엄마가
어딜 가는지 내려왔다.
혹시 댁에 쌀 배달 왔었냐고 물으니 한 사람은 아니라 하고
한 사람은 엊그제 시골에서 택배로 오긴 했는데 왜냐고 묻는다.
바닥에 흘린 쌀을 보라하니 아까도 없었는데 왠거냐는 것이다.
나는 아침에 본 것인데 왔다갔다 하면서도 못 봤다고 한다.
예사로 그냥 지나쳤으면 못 봤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못 본 양 못 들은 양 둘이 나간다.
마침 옆집 애기 엄마가 들어온다.
이 역시 나갈때 못봤다 하고 쌀배달도 없었다 한다.
아침부터 분명히 있었는데... 나만 이상한 사람같다.
그렇다면 2층 옆집도 아니고 3층 두 집도 아니라면 4층에 두 집 중에 한 집인가.
에고에고...찾아가서 물어 볼 수도 없고..쯥...
빗자루를 들고 나와 바닥을 바닥바닥 소리나게 쓸었다.
어느 글에서 보니 내 집 앞만 쓸려면 차라리 쓸지 말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빗자루 든 김에 아래까지 쓸자.
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이랑 비둘기 털이 날아 들어
통로 입구가 지저분 하기도 했다.
마른 먼지가 코구멍을 간지럽혔다.
현관 복도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에도 없던 복도 청소를 했다.
옆집 애기엄마도 빗자루를 들고 나와 엉거주춤 서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맨발로 나와 아슬하게 계단 난간을 잡고
'음맘마~'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그만 들어가 내가 쓸고 갈게'
사실은 잠깐 옆집 애기엄마를 의심(?)했다.
평소에도 유치원 딸래미가 과자먹다 흘리고
껌을 붙여놔도 잘 치우지를 않았었고
하필이면 우리 층 두 집 앞에 쌀이 흘려져 있었으니 말이지.
내 목소리에 약간 흥분기가 들었을 것이다.
감정조절능력이 부족해서 잘 들키는 타입인지라
옆집 새댁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순간 화가 좀 나긴 했었다.
공동주택의 맹점이 내 것을 내 것처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 안만 쓸고 닦을 줄 알지 집 밖은 보살피지를 않는다.
관리실 아저씨가 계셔서 정리를 하시긴 하지만
우리처럼 복도청소까지 해주는 인력이 없는 곳에서는
서로가 내 집처럼 쓸고 내가 흘린 것은 주워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의 사고방식이 각자 다르다.
그렇다고 너는 뭐 철저히 하냐고 묻는다면..글쎄...생각에 맡겨야지.
플라스틱 빗자루 사이에 끼었던 쌀알이
우리집 베란다까지 따라와서 뚝뚝 떨어진다.
이왕 이렇게 할 거였으면 먼저 본 내가 쓸면 그만인 것을
괜히 화를 내고 의심을 하고 뽀루퉁거린 내가 참 우습다.
그도 아니면 흘려놨던지 말던지 그냥 냅두면 될 것을..
오늘의 운세에 [마음이 허락하지 않으면 하지마라]했던데
결국 하면서 궁시렁거렸으니 나도 참..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