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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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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불


BY 모퉁이 2005-10-28

 

4주째 비 오는 금요일이다.

가을 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더니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제법 쌀쌀해진단다.

오늘이 시월하고도 스무여드레이니 추워질 때도 되었다.

어느해 시월 끝자락에 속리산에 갔다가

눈에 파묻혀 덜덜 떨던 생각이 난다.

 

혼자 있을 때에는 좀처럼 보일러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요즘은 전기제품이 많아서 요긴하게 쓰인다만

예전에는 연탄불 하나에 많이 의지를 했었다.

추석을 계기로 연탄불을 지폈는데 낮에는 화덕에 빼놓았다가

보리물을 끓이거나 따로 쓰다가 저녁이면 아궁이에 넣어

방을 데우다가 요즘처럼 쌀쌀해지면 그때부터는 이 불씨에

매우 민감하게 된다.

어쩌다 저녁 외출이 있게 되면 연탄을 미리 갈아놓고 가는데

불구멍을 너무 막아 놓으면 연탄이 꺼먼채로 질식사 해버리고

 많이 열어놓으면 허옇게 단명을 해버리는 바람에 번개탄으로

불씨를 살려야 했고 그런 날엔 몇시간을 냉방에서 떨어야 했다.

어떤날엔 주인댁 할머니 아궁이에서 활활 타고 있는 불씨를

빌렸는데 그때는 새 연탄을 한 장 주고 바꿔왔다.

하지만 보통은 서로 불씨를 빌려주기도 했다.

 

하루 걸러 찾아오는 연탄재 수거차는 왜그리 새벽에 오는지.

쓰레기차는 음악을 틀고 왔지만 연탄재 수거차는 쇠종을 울리며 왔다.

딸랑딸랑..두부 종소리와 닮은 그 종소리가 나면 바로 일어나

바지 가랭이를 찾아 비틀거리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이틀동안

태운 연탄재를 버리러 가야 했다.

보기엔 껑충하니 잘 뛰게 생겼지만 절대 아니어서

연탄재를 비우는 날에는 언제나 바쁜 걸음으로 새벽운동을 해야했었고

급히 나온 동네 아줌마들의 차림새도 각색들이었다.

그땐 왜 그런 일도 다 여자들이 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즘 남자들은 가벼운 쓰레기도 다 버려주던데 말이지.

 

되돌아 생각하면 참 고단한 생활 같다만

그때는 불씨 하나로도 정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겨우내 쓸 장작개비와 김장을 끝내고는  흐뭇해 하던 엄마를

 내가 연탄을 가득 쟁여놓고서야 그 마음이 이해되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불씨 빌리러 갈 일도 없고  빌려줄 일도 없고

날마다 연탄가스 중독의 안타까운 소식도 없다만

그래도 가끔은 고등어 자반을 구울 때면 그리워 지는 연탄불이다.

오늘처럼 스산한 날이면 연탄 화로에서 터뜨린 군밤도 맛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