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아우가 시댁에서 가져왔다며 애호박을 하나 주었다.
시장에서 사먹는 호박은 길죽한데 이 호박은 동그랗다.
애기 얼굴 만한 크기인데도 호박 속이 연했다.
굵직하게 썰은 호박에 양파와 새우젓을 넣고 국물 자작하게 볶았다.
양파가 들어간 탓인지 달작지근하고 부드러운 맛이 좋았다.
호박 나물을 하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유난히 호박 나물을 좋아하셨다.
농사는 없었지만 호박 구덩이는 몇 군데 있어서
반질반질 때깔 좋은 애호박은 아버지 반찬으로 자주 밥상에 올랐다.
호박볶음이나 호박찌게 하나면 밥 한 그릇을 비우던 아버지.
지금 생각하니 이가 성하지 않아서 물컹한 호박나물을 즐겨 드신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속절없이 자란 호박은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다가
찬바람 몰고 온 겨울날 호박범벅으로 변신하여 내 숟가락 질을 바쁘게 하였고
길게 잘라 빨랫줄에 걸려 꼬들하게 마른 호박은
모락모락 호박떡으로 태어나 입맛을 채워 주었고
노란 속을 긁어 부친 호박 부침도 고소했는데
아버지 밥상에 오른 호박 나물을 보지 못한지도 벌써 스물다섯 해가 되었다.
아버지 식성을 닮았는지 나도 호박을 좋아한다.
해마다 누렁 호박 한 두 통 얻어다가 강낭콩 숭숭 들어간 호박죽을 끓인다.
쌀가루는 너무 곱게 빻지 않고 집에서 불린 쌀을 믹서기에
대충 갈아 거칠게 한다.그렇게 끓인 것이 입에 씹히는 맛이 있어 좋다.
호박죽은 식어도 맛있다.
올해도 호박죽 몇 번은 끓일 것이다.
노란색 춤을 추는 호박죽을 끓이면 그때 또 아버지 생각에 잠깐 머뭇거리게 되겠지.
62세의 주름살에 짓눌린 그을린 아버지 얼굴 빛이 내리는 빗속에서 서성인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부엌에선 기름냄새가 고소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