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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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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눈다는 것은...


BY 모퉁이 2005-09-12

 

며칠전부터 토란줄기를 까서 볕에 말리는 중이다.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바싹 마르지 않아 오늘도 바깥에 내다 널었다.

 

옆 동에 또래 아줌마가 돗자리를 깔아놓고 앉아 있었다.

40키로 들이는 되어 보이는 자루를 옆에 놓고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바금이가 꼬물대는 쌀푸대를 풀어놓고 쌀벌레를 고르는 중이었다.

이 집은 쌀을 사먹는 집이라 쌀벌레 생길 정도로

쌀을 쟁여놓고 먹는 집이 아닐텐데..어쩌다 이 지경(?)이여?

 

말인즉,주말에 남편이 고향선산에 벌초를 갔다가

새벽녁에 들어온 손에 왠 자루가 들려 있었단다.

고향에서 젖소 300두 넘게 키우는 알부자 친구가

쌀을 한 자루 주더라며 날 밝으면 고맙다고 전화라도 하라고 하더란다.

고맙지..고맙고요.전화를 넣어야지요.인사를 해야지요.

 

아침 날이 밝아 베란다에 세워 둔 쌀자루를 보러 나갔다가

쌀자루 밖으로 기어 나온 고물거리는 쌀벌레에 혼비백산 할 뻔한 여자.

쌀자루 주둥이를 풀어보니 이런이런,,새까만 바금이와 물커덩

거리며 꼬물대는 애벌레로 장난이 아니더란다.

고마워서 전화를 넣으려 했는데....

쌀자루를 들고 내려와 벌레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여자.

 

저 많은 쌀에서 벌레를 언제 다 골라내나.

우리 집에도 어제의 부스러기들이 밀려 있긴 했지만 옆에서 거들었다.

고추 스무근을 닦아야 되니 품앗이라 하면 되겠지?

웃는다.

지나가던 젊은이가 일러준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쌀을 까불면 벌레가 날아간다고..

재활용품 수거하는 아저씨가 쯔쯔..스러운 얼굴로 쳐다보신다.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든 좋은 것이다.

하지만 나눌때에도 예의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것이 또 이 나눔이다.

'주고도 욕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쌀을 한 자루나 주고도 반토막 난 싸래기 쌀에

벌레가 득실거리는 쌀을 주었으니 유쾌한 나눔이 되지 못했다.

'내가 지금 굶는 형편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던 그녀의 말이 괜한 트집은 아닌듯 하다.

혹시라도 나도 나눌 기회가 있다면

이런 부분은 새겨봐야 될 듯 싶다.

좋은 마음이 일그러지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