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월 한 달은 정말 다사다난(?)했다.
시어머니께서 담석 수술을 해야 된다면서 아버님을
모셔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날로부터 시작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에 안도를 하였지만
차라리 어머님은 수술을 하시고
아버님을 모셔오는게 내 맘이 편했을 것 같다.
아버님 모시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내게 또 말거리가 될 것이다.
가까운 곳에 형님 계시고 아랫동서 있지만
어머님은 유독 나한테만 요구가 많으시다.
이번 추석은 나에게 힘든 추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벌써 든다.
모임에 가서 잠시 시름을 놓기도 했다.
오랫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잠시 남의 이야기에
빠져 웃기도 했고,여행 다녀온 친구들의 여행담을 들으며
함께 못해 서운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새겨 들어주기도 하고,
큰 선물은 아니지만 조그만 성의에 눈물나게 고맙기도 했고,
건강검진 받은 결과가 재검없이 정상으로 나와서 다행인데
서예교실에 가서도 문득문득 어머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생각나 긋던 선이 어긋나기도 하고,
제대로 던진 볼링공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마 내 마음이 편치 못한 이유였을까.
그랬다.내내 그랬다.
남편의 정년이 그리 먼 세월이 아니다.
그 동안에 두 아이 중에 하나 정도는 잘 하면 여읠 것 같은데
계획대로 될 지는 모른다.
남편 정년하고 두 아이 출가하고 나면 둘이 남게 될텐데
그때 어디에 거처를 정하느냐는 깊게 생각지 않았다.
아무래도 생면부지의 이곳보다 피붙이나 친구들이라도 있는
고향 근처가 낫지 않을까 ..막연히 그렇게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 정착할 내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지금은 직장에서 준 집이 있기에 당분간 집 걱정은 없다.
결혼 7년 만에 마련한 집은 몇년을 보유하다 처분하고
지금은 무주택이다.
어디든 내 돌아갈 집이라도 하나 마련할까 마음만 있던 중
엉겹결에 소개받은 집을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
너무도 쉽게 계약을 하고, 입주는 동생이 하기로 하고
우리는 정년 후에나 내려가겠다고 했다.
계약자 이름을 내 앞으로 하란다.
22년 동안 못해준 선물이란다.
선물치고는 제법 크다.
계약서에 도장찍고 대금 치르고 돌아오던 날
바람이 몹시 불고 비까지 내리더니
급기야 으슬으슬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거렸다.
칠부 소매에 긴바지를 입었건만 속옷이 부실한 탓인지
살갗을 파고드는 약한 에어컨 바람이 겨울밤 황소바람처럼 차가웠다.
밤새 퍼부었다는 비소리는 듣지도 못하고
네 방 구석을 헤매는 신음소리에 남자도 괴로웠으리라.
미련스럽게도 하루를 더 버티다 어지간하면
하루 더 버티어 볼까 싶다가 병원을 찾아 엉덩이를 까야했다.
혓바닥도 부었고 목구멍도 부었고 심한 감기에 안정을 요한다.
며칠을 자리 보존하는 동안 밥공기 두 개와 물컵 하나가
주방에서 사라졌고,세탁기에 빨래는 넘치기 직전이고
걸레는 목이 말라 쩍쩍 갈라지고,몇 개 되지도 않는
화분도 가뭄에 목이 탄다.
나의 빈자리가 여기저기 티를 낸다.
몇 끼를 굶다시피 했더지 저울의 눈금이 몇 개 줄었다.
아랫배가 홀쭉하니 맵시는 나겠구만 당체 허리에 힘이 없다.
아쉬운대로 김치찌게를 해서 밥 한 공기 중 반을 비우고 나니
아~살 것 같다.허리 힘이 들어가니 어깨까지 펴진다.
누가 뭐래도 사람은 뱃심이고 밥심이다.
아픈만큼 성숙해 지는 것은 어릴적 이야기고
이제는 아픈만큼 늙는 것 같다.
어제는 주말농장에 가서 고춧대를 뽑아내고
김장배추 모종을 옮겨 심는 것으로 주말 마무리 했다.
겨우 추스리나 싶은데 도로아미타불 되는거 아니냐며 쉬라는 것을
남의 밭은 모종이 파랗게 자라 손바닥만큼들 자랐는데
우리 밭은 잡초만 무성하니 볼성 사나와 안되겠기에 기어이 다녀왔다.
사다가 섞은 거름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흙을 만지고 온 손끝에서 야릇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도 언젠가 우리들 이야기에 끼이는 날이 있을테지.
이런저런 일들로 복잡다난했던 8월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기침감기가 사라지면서
마지막 마무리 확실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방금 터져나온 기침소리가 이번 감기의 마지막
기침소리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