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에서 촌스런 이름이 뜨고 있다 한다.
하지만 남의 이름 가지고 뭐라 할 처지가 아닌 나다.
태어난 순서대로라면 칠공주중에 다섯번째인 내가
위로 언니 둘을 엄마 가슴에 묻은 탓에 졸지에 세째딸이 되었는데
항렬을 따진 것도 아니면서 왜 내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이름 지으신 할아버지 안 계시니 따질수도 없고....
하고 많은 글자들 중에 하필이면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두 글자를 조합할 게 뭐람.
내 나이 열한 살에 태어난 막내 동생 이름은
언니들과 머리 싸매어 예쁜 여자 이름으로 지었다.
그 이름이 좋은지 나쁜지 따져보지도 않았고
살면서 그 이름탓을 할 만큼의 생활은 아니다 싶어서
이름값을 한다는 작명가들의 말을 아직 실감한 경험은 없다.
그러한데....
내 친구 하나가 본인의 말에 의하면 세 번은 놀랜다고 했다.
그 첫번 째가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뒤로한 호리낭창한 허리의 뒷모습을 보고 놀라고
그 두번 째가 뒷모습 보고 쫓아와 앞모습 보면서 또한번 놀라서 돌아서고
그 세번 째가 본인의 이름을 듣고 또 놀란다고 했다.
그 첫번 째의 놀라움.하긴 내가 봐도 그 친구의 뒷모습은 날씬했다.
보통 키에, 가느다란 다리에, 잘록한 허리에,
매직퍼머를 한 듯한 찰랑거리는 긴생머리는
지나가는 여자들도 흘깃거리며 다시 한번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번 째 놀라움은 본인의 호들갑이지 놀래서
돌아설 만큼은 절대로 아니다.
마지막 세번 째의 놀라움인 이 친구의 이름을 들으면
슬그머니 고개 돌려 피식 웃기도 한다.
그녀의 이름은 갑돌이의 반쪽인 갑순이도 아니고
책제목 때문에 시선 끌었던 탈랜트 이름의 갑숙이도 아니고
여자 이름치고는 개성이 무척이나 강한 그 이름은 '갑석'이다.
이름에 '갑'이라는 글자 자체가 약간 고향스러운데다가
'석'이란 글자도 그에 못지 않은데 '갑'과 '석'이 만나니
여자 이름치고는 참 묘한 이름이 만들어졌다.
집안마다 항렬이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따르다 보면
생뚱맞은 이름이 만들어져서 간혹은 부르기조차 곤혹스러운 이름도 있긴 있다.
시골에 살 때 자장면집 사장님 이름이 '김쌍년'이었고
티비 어느 프로에 나온 아줌마 이름이 '나죽자' 라고 했다.
이 친구가 어느날 내게 자기 이름을 바꾸었다고 했다.
요즘은 적절한 이유가 되면 개명이 가능하지만
그땐 이름을 바꾸려면 절차가 까다로웠고 재판을 받아야 된다고 해서
까짓꺼 딸 이름 하나 가지고 법원에 다닐만큼 한량한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물어보니,호적에는 손을 대지 않고
며칠 머리를 쥐어 짜내어 본인이 지은 이름이라 했다.
이름을 바꾼 이유가 재밌었다.
앞으로 남자 친구도 사귀게 될텐데 그때 내 이름을 갑석이라 말하면
그 남자가 웃을 것 같다면서 여자 이름에 많이 들어가는'미'자가 들어간
'미영'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데이트를 하던 남자가 [갑석 양~!]하고 부르면 성냥 종류같지 않냐는 것이었다.
오호~그러고 보니 [갑석 양]이 [갑성냥]으로 들린다.
[갑석 씨]라 불러달라고 하면 되잖냐고 해봤지만 한사코 [미영]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 그러마..
그리하여 그 친구는 갑석이가 아닌 미영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몇 년..결혼을 하고 임신 했을 때 까지는 미영이었다.
아이를 낳았다.
그 호리낭창하던 허리가 엉덩이와의 경계선을 허물어 버린 몸으로 변했다.
길다란 생머리는 싹뚝 오려냈고 잘록하던 허리는 엉덩이를 덮으려 들었으니
그 옛날에 남자들이 뒷모습 보고 쫓아왔다는 말이 허망해졌다.
그땐 뒷모습이라도 놀랠만 했는데 이젠 뭘 보고 놀래나..
그렇다고 미영이란 이름이 남아 있기나 하건디..
갑석이는 네모난 인증서에나 각인되어 지갑속에 감춰두고
갑석이,미영이 대신 누구 엄마로 변해 버린 것을...
어쩌다 이름 석 자 불리는 곳은 가끔 가는 병원이거나 문화센타 등록시다.
그것도 익숙치 못해 몇 번이고 불러대야 고개 들기도 한다.
나만의 고유번호같은 이름이 멀어진지 오래이지만
이제 만나면 '누구 엄마' 대신 기억 속의 그 이름 갑석이를 불러주고 싶다.
"어요~갑석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