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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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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차 왕초보의 연수기


BY 모퉁이 2005-06-12

 

요즘 티비를 보면 모두 잘먹고 잘살자는 내용이다.

여기저기 맛있는 맛집과 음식 소개가 나오자

그렇잖아도 음식솜씨없는 내가 주말농장을 하고부터는

입에서 풀내가 나도록 야채만 먹였더니 은근히 질책하는

눈길을 내게 보낸다.

입맛만 다시고 앉은 식구들에게 중대한 발표를 했다.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회를 먹으러 가면 어떻겠노?]

당연히 좋아들 한다.

 

그런데 그 횟집이 집에서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걸으면 15분~20분이 걸릴 것 같으고 차를 가져가자니

남편이 술을 못 마실 것 같으다.

안주 좋은데 술 한 잔 못하면 무척 서운할텐데 어쩌나..

이럴때 운전을 하면 좀 좋으냐고 타박을 준다.

[내가 할려면 못할줄 알어?

내가 운전을 하면 당신 버릇 나빠질까봐 안한다구..]

 

걷자는 말에 남편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아이들이었다.

서산에 해 떨어지자 바람이 선선해서 걸어도 무리가 없겠구만

터덜터덜 앞장서 걷는 모습이 영 맘에 안든다.

[그래..차를 갖고 가자.내가 운전할께,,까짓거 해보지 뭐..야들아~차 타고 가자~]

터덜대던 다리가 붕붕 날아와서 제 자리에 착석했다.

 

목적지까지는 남편이 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갈 때 못하면 올 때도  못할 거 아니여.

키는 내 손에 떨어졌다.

[엄마가 운전하는거야?]

아이들 얼굴에 걱정이 묻어있었다.

[그려,,엄마가 할거여]

 

토요일 오후라 차가 좀 밀렸다.

차라리 나는 밀리기는게 나았다.

어차피 쑥쑥 빨리 달리지 못할거 천천히 가는 핑계라도 생기니 말이다.

앞으로 가 똑바로 가 한 눈 팔지 말고 가~♪

무슨 노래가사같지만 내게 딱 맞는 말이다.

 

똑바로 가는거야 가는데 차선 바꾸기가 난관이었다.

깜빡이 넣고 한 대 보내고 끼어들기 자세로 돌입하라는 주문을 받고

그러지 뭐..

그러나 아차~간이 울렁거려서 또 한 대를 양보하자 뒷차가 빵빵대었다.

재차 시도..

이번엔 간신히 끼어들기 성공~

[그래 그렇게 하믄 돼.겁내지 말고 천천히 가면 돼]

 

우짠일인지 예전처럼 벼락소리도 하지 않고 얌전하게 코치를 한다.

잘못했다간 안주감 날리고 집으로 직행하는 불상사 겪을까봐 그러는건 아닐테지?

 

횟집 앞에서 주차는 횟집에서 알아서 해준다고 들어가랜다.

회를 시키고 아이들은 음료수를 시키는데 남편은 술을 주문하지 않았다.

나중에 주문하겠다고 했다.

[왜? 못 미덥구나..올 때처럼 가면 되잖겠수? 한 잔 하슈]

 

아무래도 안주가 아까운 모양이다.

[여기요~소주 한 병 주이소]

잔을 두 개 갖고 오자 하나만 달란다.

캬~술이 고팠는지 술잔까지 빨아 들이는 소리를 내면서 들이킨다.

운전은 나중 일이다.

여차한다 해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니 나도 걱정은 없었다.

 

행복이란 무엇이냐'란 주제로 나름대로의 역설을 해대는 남편.

더 어둡기 전에 집으로 가야겠다는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행복이란 내 마음에 있는 것이고 큰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고

자동차 열쇠를 쥐었다.

 

출발은 좋았다.

길눈이 어둡기도 하지만 운전에만 온 신경을 쏟다보니

우회전할 길을 놓치고 말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사방에 뚫린 길 돌아가면 어떠하리.

이미 지어진 시조에 자작시조를 읊어대며 연수 한다치고 돌아가자 한다.

 

[쭈욱 밟아~그렇지 그렇게 하면 돼.잘 하네.제법이네. 겁먹지 말고

자~오른쪽 깜박이 넣고..천천히..신호등 보고..쭉 올라가~]

지난번 차는 수동이어서 오르막이 난코스였다.

정지했다가 못 올라가면 어쩌나..뒤로 밀려 뒷차를 박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번 차는 그렇지 않아 편했다.

아이들도 손에 땀을 쥐고 '엄마'를 외쳐대는 일도 없었다.

전에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긴장이 되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까지 사오는 여유도 있었다.

그리고 도착하여 주차도 안전하게 정확하게 꽂았다.

주변에 걸리적 거리는 차가 없었거든. ㅎㅎ

 

자고 나서 오늘은 옆동네 공원 약수터에 물을 뜨러 가잔다.

이참에 연수를 마져 하잔다.

그래볼까?

물통을 담아 싣고 키를 꽂았다.

어제의 기운을 받았는지 오늘은 유턴까지 성공해서 무사히 다녀왔다.

 

운전은 급박할 때 쓰기 위해서라도 기능은 익혀놔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대중교통이나 11호 자가용이 익숙해서 그게 편한걸 어쩌나...

베스트 드라이버 되기까지는 한참 멀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