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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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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 근황들


BY 모퉁이 2005-06-10

결혼 7년 만에 조그만 집을 하나 장만하여 이사를 했다.

그 집은 곧 타향살이를 시작하는 집이었다.

일가친척 피붙이라고는 모두 경상도 땅에 두고

나는 충청도 어느 시골 면단위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한 동에 여섯가구가 사는 연립주택을 분양받고 처음 내 집이라고

들어 앉으면서 셋방살이 하면서도 주인댁과 크게 나쁜 관계를

가져보지는 않았지만 한참 뛰고 굴릴 나이인 일곱살 다섯살짜리

 두 딸을 키우기에는 작지만 내 집이라는 것에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래로 두 가구 옆으로 세 가구를 이웃하며 만 다섯 해 하고 여섯 달을 지냈다.

 

3층인 우리집 바로 아래층 아줌마는 큰언니와 나이가 같아서 언니처럼 지냈고

그 아래층에는 특별히 가까이 할만한 세대가 아니어서

오며가며 눈인사는 했지만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바로 옆집 여자는 신혼새댁이었는데 집 밖을 잘 나오지 않아서

말도 몇마디 해보지 못하고 이사를 보냈었고

옆집 의 아래집 여자는 고향은 다르지만 같은 경상도 여자라서

우선 말투가 비슷해서 좋았다.

그 밑에 일층에는  딸 셋을 출가시키고 내외분이 살갑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

딸만 있는 친정 엄마를 생각케 하는 분이셨다.

 

작은 연립이지만 반장도 있었다.

이층에 언니네가 처음 반장을 하다가 다음으로 내가 바톤을 받았다.

반장이래야 완장 찰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기료나 물값,그리고 분뇨수거 할 때 드는 비용 등을

비축하는 금액 얼마씩을 거두어 관리 하는 일이 전부였다.

말하자면 관리비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처음 입주한 사람들이라 집도 깨끗했고 관리도 잘했다.

물청소도 같이 했고 물청소 후에 커피도 같이 마셨고

상추쌈도 나눠먹고 부침개 하나도 서로 나누는 정이 있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우리는 면단위를 벗어나게 되었다.

시내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우리 여섯가구는 모두 야유회를 갔다.

애 어른 아래층 할머니까지 모셔 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었는데

결국 그것은 야유회라기 보다 송별회였다.

 

그곳에서 6년 가까이 지낸 시절을 아이들은 지금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친다.

나이도 그럴때 였지만 잠자리도 잡고 비료푸대 썰매도 타봤고

산나물 뜯으러 따라도 다녀봤고,문 열어놓고 지내는 소박함도 눈으로 보고 자랐다.

 

그곳을 떠난지 이제 햇수로 10년이다.

가끔 생각이 날때면 옆집 아래층에 살던 경상도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한꺼번에 듣는 안부는 한 시간도 모자란다.

이럴땐 시외전화 정액제 턱을 확실히 본다.

 

비는 축축히 오고 해서 하릴없이 전화기를 붙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다.

어디 아프냐고 인사차 물었더니 체기가 있어 기운이 없단다.

한 끼 굶는게 약이라고 웃겨보았지만 크게 웃는 것 같지가 않다.

쓸데없는 소리 했나 싶어 다른 이웃들의 근황을 물었다.

누구도 그렇고 누구네도 그렇고 사는게 별 수 없는지

다들 그렇고 그렇게 산다고 전해주었다.

그래..사는게 그렇지 크게 달라질게 뭐 있냐.

변화가 없는게 오히려 잘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00이 엄마 기억나?]

[그래..기억나지..쪼꼬맣고 얼굴에 주근깨 덮인 엄마 아니여?]

[그려..그런데......]

[왜.....죽었어?]

[그게 아니라....한 일 년 되었나? 집 나갔어..]

[왜?]

[그 집 남자가 워낙 의처증이 있었던데다가 근간에는 때리기 까지 했다네.

그 쪼꼬만 여자가 버티다 버티다 집을 나갔어.큰애는 군대갔고

작은 애는 지지리 속을 썩이더니 고등학교 겨우 졸업하고 지금은

어데 취직을 했는지 나가긴 한다더라.지금 그 남자 꼬라지가 말이 아녀.]

[에구...우짠 일이여..?츠암..]

 

[거 머시기 엄마는 잘 있어?]

[말도 마..그 집도 씀씀이는 여전해서 버는건 그대론데 쓰는건 헤퍼서

얼마전에 전세빼서 월세로 나갔어.그래도 머리 깍으러 갈때도

식구대로 유명한 미용실에 가서 하루 있다 오고, 백화점 다니고

내외가 똑 같애..애들은 크고 나이는 들어가면서 정신 못차리고 살어..]

 

[일층에 할머니는 건강하시나?]

[참..얼마전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어.그래서 할머니 혼자 계셔..

자기 엄마 같다고 좋아했었잖어..처음엔 말씀이 없으셔서

노인네가 참 차겁다고 했었잖어.그런데 속정이 있으셔서 나하고 잘 친해..]

 

[건너편 앞집에 거 왜 아저씨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00이네는?]

[응..학교 급식소에 취직해서 아이들 데리고 반듯하게 잘 살어.

워낙에 부지런 했던지라 텃밭은 요즘도 싱싱해..아저씨 연금 나올테고

딸들 공부 잘해서 그나마 시름 놓아도 될거여..그래도 외롭긴 할테지..]

 

[참..저 건너편 주근깨 많던 애 있잖어.그 엄마는 요즘도 교회 열심히 봉사하나?]

[그 집도 참..아저씨가 맨날 그래..마누라가 버니까 그런지 일 있음 하고 없음 말고

백수여..그래서 여자도 요즘은 좀 그런가봐..집이 엉망이더라..]

[아~씨~다들 왜 그런디야?]

[에휴~몰라.......나도.....사실...좀 힘들었어.]

[왜..?뭔 일 있었어?]

[우리 거시기 아빠 있잖어.속 좀 썩였어..]

[아니 거시기 아빠가 뭔 속을 썩여?세상에 점잖은 양반이..]

[그렁께 남의집 일은 안 살아보믄 모른거여.

나도 알았건디..그 남자가 내 속을 그렇게 문드러지게 해놓을 줄..

나 이혼할려고 했었어.자식도 눈에 안들어오더라.

친정에 3개월을 가 있었는데 애들 데리고 빌러 왔더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무 내색 없더니 뭔 일이래?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서 2년을 속을 앓았단다.

친정에서 돌아오면서 온 마음을 가시며 마지막으로 그 여자를 만났는데

세상에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마눌보다 연상에다 가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 있는 따지고 보면 그 여자도 불쌍한 여자더라는 것이었다.

참 이 남자가 이리도 눈높이가 낮았더냐.

차라리 나보다 훨 젊고 나은 여자였더라면 자존심이라도 덜 구겨지기

이건 아닌데...정말 아닌데..싶어 눈물이 솟더란다.

이혼은 열두번도 더 결심했지만 마음 다잡고 보니 지나온 세월이

너무도 허망하고 바보처럼 살았구나 싶어 갈 곳 없는 설움보다

지난날이 후회되어 억장이 무너지더란다.

남편이 정리를 하고 돌아온지 좀 되었다는데도

지금도 벌떡벌떡 심장이 뛰어서 예전처럼 살갑지도 않고

쳐다보는 눈꼬리도 매스껍고,어쩌다 스치는 손길도 구역스러워

뿌리치게 되었으니  어쩌냐고 한다.

 

그 아저씨는 충청도 본토 사투리가 심해서 말문 막히면 거시기'라 했었다.

[저,거시기 엄마 거시기 어딨어?]

나는 도통 모르겠두만 거시기 엄마는 그 거시기가 뭘 말하는지 담박 알아들었다.

경상도 여자와 충청도 남자의 대화를 들어보면 재밌었다.

[거시기 아빠~!이거 할겨 말겨?]

[할라믄 햐~]

[아니 하믄 하고 말면 말지 할라믄 햐~가 뭐여.확실히 좀 해봐요]

[그람 하덩가..]

우리는 웃었었다.

우리집 남자손에서는 보지 못했던 검정 비닐 봉지도 잘 들고 왔고

올갱이 잡이,고사리 꺽으러도 다녔고,빙어도 잡으러 같이 갔었던

그 덥수룩한 수염에 범생이 같던 남자가 마누라 속을 문들어지게 해놓았다 한다.

 

"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큰 돌은 피하는데 작은 돌맹이에 미끄러져서

발목삐고 까지더라구.사람도 그런가벼.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큰 상처를 받고 사는 것 같어.

나는 아파 폴짝 뛰겠는데 보는 이는 그게 아니니 문제지만

어떻하냐//정말 안 살겨? 심정을 이해한다고 한들 자기 속만큼 하겠나.

우리가 아무리 건망증이 심하다 해도 잊을게 잊지 쉽지는 않을거여.

하지만 한 박자 더 쉬었다 생각해보자.헤어지는게 능사는 아니잖어.

거시기 아빠도 마음 정리했고 눈에 보이게 충실해졌다 하니 한 번 더

미끄러지는 셈치고 마음 다스리면 어떨까.그렇지만 앞으로 작은 돌멩이도

잘 보고 걸어다녀.엉덩방아 찧으면 일어나기도 힘들어야.."

 

안부차 걸었던 전화에서 한숨만 들었다.

뭐라 대답도 궁한 차에 딩동~벨 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오더니

이런...3층 옥탑에 물이 넘쳐서 계단으로 흘러내려 야단 났단다.

나중에 전화하마 하고 털커덕 전화기 던지는 소리가 났다.

집 걱정 하는 걸 보니 그녀도 독한 마음먹기는 힘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