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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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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에게


BY 모퉁이 2005-06-07

 

y야!

어제는 날콩가루를 넣고 반죽한 밀가루 수제비를 끓였다.

수제비 반죽은 잘 되었다.감자도 넣고,호박도 넣었다.

바지락은 없어서 못넣고 대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내어 끓였더니

줄 서서 기다렸다 먹어본 삼청동 수제비보다 훨 낫더라.

지지난해 가을에 경복궁 건너편 어느 유명한 만두집에서 먹었던

사골 수제비는 느끼해서 싫다고 했었지.

구운 고기는 잘 먹으면서 삶은 고기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무리 봐도 닮은 것 하나 없는 너와 나의 유일한 닮은점이더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정말 너와 나는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듯 하다.

너는 키가 작고 나는 크고,너는 약간 통통하고 나는 말랐고,

너는 눈이 엄청 크고 나는 대충 크고,너는 피부가 희고 나는 검은편이고,

너는 몸이 유연하고 나는 뻣뻣하고,

너는 일단 저지르는 대범한 편이고 나는 엄청 생각하는 소심한 편이고,

너는 물건을 늘어놓는 편이고 나는 정리하는 편이고,

그리고 또 하나, 너는 국수를 잘 삶았고 나는 수제비 반죽을 잘 했지.

 

언제였더라..

둘이 집을 나가고 싶어 모의를 하던 시절이 있었잖니.

구질구질한 동네가 싫다고 기회가 되면 둘이 집을 나가자고 쑥덕공론을 폈잖냐.

취직해서 둘이 방을 하나 얻어서 같이 살자 했었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돈도 벌자고 했었지.

네가 그림을 좋아했고 잘 그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었다.

마땅히 정한 메뉴가 없으면 국수는 네가 삶고 나는 수제비를 끓이자고 했었지.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야무진 꿈으로 그치고 말았었지.

너는 서울이란 곳으로 떠났고 혼자 남은 나는 너에게 하루하루를 일러 바치는

글을 쓰기 시작했지.네가 떠나 있던 2년여에 참 많은 편지를 썼던 것 같다.

2년 만에 만난 우리는 2년 동안의 이야기를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가슴 속에

담아놓고 상채기 날까봐 조심스럽게 다독이곤 하지.

그런 아픔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함께 해오지도 못했을지 몰라.

 

y야!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어느새 우리가 만난지 30년이 더 지났구나.

어느날 이웃에 이사를 온 눈이 큰 소녀가 있었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등굣길에 우산없이 먹먹히 서 있던 네게

같이 쓰자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나도 그렇지만

너도 참 말문트기 어려워하기는 매한가지였었나부다.

기어이 네 엄마가 거들어서야 우리는 우산을 함께 쓰긴 했지만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말한마디 없었다고 한참 후에 네가 말을 해서 웃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붙임성 없고,낯가림이 심한 내가 너와 지금까지

친구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보통 이상의 대단한 일이다.

 

새끼손가락 걸고 맹세한 약속도 없었고,그 흔한 말로 [변치말자]라는

말도 입 간지러워 뱉어보지 못했던 숙맥들이었지만

단발머리 나폴대던 열여섯의 우정이 지금까지 쇠소리 한번 내지 않고

불혹을 받아 들였고 이제 다가오는 지천명을 향해 가고 있으니 저만치

앞서간 발자욱에 묻어있는 눈물과 애환마져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제법 굵어진 허리둘레하며,거스를수 없는 잔주름과 주책맞게 삐져 나온

흰머리카락이 지나온 세월을 말없이 일러준다.

우리가 만난 시절보다 더 지난 자식을 둔 에미가 된 지금에도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동무가 있다는 것은 내게 행운이고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내 힘든 시절까지 같이 인내하던 너였기에 너는 내게 있어

또 하나의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y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