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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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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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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도 외로움도 내가 만든다..?


BY 모퉁이 2005-06-02

얼마전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아는 아우가

한쪽 유방에 종양이 의심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같이 앉은 자리에서 통보를 받는 아우의 얼굴색이 싸늘해졌다.

지레 걱정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이 당장

무슨 소용있겠냐만은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심란한 마음인지 같이 걷자고 했다.

 

아파트단지 마을을 비켜나서 조그만 정자가 보였다.

잠시 쉬어가자며 앉았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둘과 먼저 앉아 계시던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와 셋이었다.

막 자리에 앉는 우리에게 반가운 사람을 만난양

초등학교를 어디에 나왔냐고 물으셨다.

서울이 고향인 아우가 어느 학교를 말하자 고개를 갸웃대시고

나는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 했더니 그러냐신다.

 

할머니는 몇 해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였고 67세의 나이로

정년을 하셨다 말을 듣지 않아도 얼굴이 곱고 손등도 고와 보이는게

한 눈에도 고생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올해 76세라시는데 78세 되신 울엄마에 비하면 한참 젊어보였다.

 

울엄마가 그랬듯이 할머니도 말동무가 무척 그리웠던 것 같았다.

우리를 만나자 옛날 이야기를 꺼내셨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던 이야기며 일본 소설이야기를 주로 하셨는데

그것은 소시적의 추억을 되짚고 싶은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한참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할머니가 외톨이라는 것을 느꼈다.

경노당이나 노인정에 대한 이해가 우리와 달랐다.

그곳에 오시는 노인분들을 무식하고 저질이라는 표현에 잠깐 놀랬다.

경노당에는 무식한 할머니들이 와서 영양가 없는 대화나 나누고

놀음패같은 화투놀이나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누구와 옛날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그때 읽었던 일본 소설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일본말 하는 사람도 들을줄 아는 사람도 없으니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부모세대 대부분이 험난한 세월을 사셨던 분이다.

울엄마가 그랬듯이 여자란 이유로,가난한 탓으로 글자를

깨치지 못한 어른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어른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이만큼 성장한 나라에서

이만한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을..

칠순을 넘긴 지금에 와서 많이 배우고 덜 배운게 벽이 되어

혼자 단절된 생활을 하시는 할머니가 오히려 안타까웠다.

 

 전직 교장선생님이 건물 경비일을 보시고

소위 잘 나가는 직업을 가졌던 분들도 정년 후에는

당시의 직위를 버리고 작은 일거리를 찾아 봉사하고

내 일에 보람을 찾는다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사회 곳곳의 어려운 사람들과 어울려 평생 하지 못할 것 같은

궂은 일도 하시고,소외된 사람들과 벗이 되어 사는 분들도 많으시다.

그 분들과 지식이 통해서 대화가 통할까.

마음이 통하니 통하는 대화가 생기지 않을까.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달랐기에 공통된 화제를 찾지 못하신다면

지금 이야기를 하시면 안될까요?

영감님 흉도 보시고 며느리 자랑도 하시고 손주 이야기에

요즘 잘 나가는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이야기도 하시고

그렇게 어울리시면 안될까요?

국수도 삶아서 함께 드시고 온국민의 치매공부 10원짜리

민화투도 치시고 하시지요.

그렇다고 2년에 한 번 만난다는 할머니 친구분들이 뭐라하지 않을걸요.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게 아닐까요.

그 즐거움도 내가 만드는 것일테고 반대로 외로움도 내가 만드는 게 아닐까요?

그러면 오늘같은 날 혼자 앉아 계시지는 않을텐데....'

 

사는 일이 그리 녹녹치 않아서 어이 헌날 즐겁기만 하겠나만은

스스로 나를 격리시켜 외로울 필요는 없지 싶다.

더 배우고 덜 배우고가 지금에 와서 무에 그리 중요한지..

남은 세월 건강하고 밝게 즐겁게 살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살아온 세월을 엮어보면 누구 인생 하나 중요치 않을까.

남의 삶을 함부로 무식하다 저질이다 하기는 너무 이기적이다.

 

'종양'이란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물컹거림을 느낀 아우가

쓸쓸한 웃음을 웃는다.

많이 배운 것이 외로움만 주어 불행해 보인단다.

내일을 모르는 우리인데 저렇듯 부질없는 울타리를 쳐놓고

넋두리 하나 들어줄 친구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단다.

이제와서 정치 이야기를 할 것인가,경제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저 건강하게 사는거,맛있게 먹는거,듣고 버릴 이야기지만

웃을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도 모자랄 생인데 말이다.

 

아우와 처음 나누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새겨 들리는 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재검결과 이상없음을 알려왔으면 좋으련만..

괜찮겠지..괜찮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