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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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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구인광고


BY 모퉁이 2005-05-26

 

작년 봄에 윤중로 벚꽃구경을 함께 하고

가을에 가죽 자켓을 사러 함께 나갔던 친구같은 동생이 있다.

그간 안부가 궁금하여 전화를 넣었더니

출근을 해야 된다며 다녀와서 전화를 주겠다 한다.

어쩌구 던질 대사도 못찾고 그냥...어어 하다 뚜뚜 끊어진

전화기의 숭숭 뚫린 구멍만 쏘아보다 내려놓았다.

 

공식대로 사는 사람처럼 하겠다던 시간에 전화가 왔다.

출근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기도 전에

 정말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한다.

우연히 지나가다 모 대학 구내식당 주방 보조 모집 광고를 보고

까짓껏 20년을 넘게 해 온 일인데 못할까 싶어 덜컥 일을 하겠다고 나선 걸음

3일 만에 두 손을 들게 하였는데 사장님 눈에 들게 일을 야물딱지게 잘했는지

놓치기 싫어하는 사장님 권유로 학생들 방학때 까지만 거들어 주기로

약속하고 일을 한 지 한 달이 되었다고 했다.

 

시급 4000원에 하루 다섯시간을 일해서 받는 돈이 2만원인데

정말 코피 터지기 직전이라며 입에서 돈이 꾸역꾸역 나올 것 같다며

식당 하는 사람이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인다고 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음식장사가 만만한 일은 아니라고들 했다.

집에 손님 몇명만 초대를 해도 일거리가 쌓이는데 하물며

수백명 입을 채울 음식을 준비하고 나르고 치우는 일이란 가히 짐작이 간다.

남편들 버는 돈 정말 아껴쓰고 규모있게 써야 되겠더라며

'언니! 돈 벌기 정말 어렵더라.'

그려...돈 벌기 어디 쉬운가.

 

등산을 다녀오는데 동네 어귀 가로등에 구인광고가 붙어 있었다.

가위질 되어 팔랑거리는 쪽지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필요로 하는 곳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55세까지 환영하며

주 5일 근무에 (빨간 날 다 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유치원 교재 만드는 작업인데 [평생직]이라 강조를 하였다.

평생직이라...주부 말고 또 평생직이라니...

시간 조건이 맘에 들어 적혀있는 번호를 눌러보았다.

사십대면 아주 좋다며 당장 와 볼 수 있냐고 했다.

당장은 그렇다 하니 좋은 시간을 잡아주며 그때 와보라 했다.

정식 직원은 아닌것 같지만 급료도 중요해서 물었다.

시급 4000원도 세다고 하는 주부들인데

월급이 7~8십만원 된다고 하여 갑자기 기운이 솟았다.

같이 오던 이웃집 아우랑 좋은 기회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살짝 둘이 가자고 약속도 했다.

 

가보기로 한 날,단장은 아니더라도 머리는 감고 가야겠기에

막 머리에 물칠을 했는데 전화가 왔다.

꼭 오라는 당부 전화였다.

정확한 위치를 물으니 어디어디쯤 와서 00빌딩 몇층으로 오란다.

전화 온 시간이 오전 9시 경이었는데 벌써 출근들을 했는지

전화기 너머에서는 시끌시끌 사람들 소리가 흘러왔다.

이상하다.주부들이 바쁜 시간일텐데 이렇게 일찍들 출근을 하나?

유치원 교재를 오리고 붙이는 단순작업이라더니

무슨 시내 가운데 빌딩 사무실로 오라는지..

 

옆에서 듣던 딸아이가 나선다.

무언가 석연찮은 냄새(?)가 난다며 거기 안가면 안되겠냐고 한다.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 작업 하는 곳이 아닐 것 같으다.

보통 시급 3000원에서 3500원을 주는데 따져보니

일하는 시간에 비해 월급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구직자가 줄을 섰겠구만

오시오 오시오 하며 전화를 하는 친절이 부담스럽다.

정 그래도 가보고 싶다면 현장 구경이나 하고 오던지 하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안가는게 낫겠다'다.

 

처음엔 가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아이 말을 듣고 이런저런 정리를 해보고

정말 가도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못가게 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그랬음에도 다음날 또 연락이 왔다.

그리도 또 다음날 연락이 왔다.

정중히 거절(?)을 하자 언제든지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는 말을 남겼다.

 

불경기라고 한다.

주부들 취업도 어렵고 부업도 별로 할만한게 없다.

아니..찾아보면 많겠지만 내 조건에 맞는걸 못 찾았다.

이러는 중에 찾아온 기회인데 내가 차버린 것인지 잘 한 일인지

한 번 가보기라도 할 것을 그랬나..

아쉬움과 궁금증이 며칠간 머리에 남아 있던 차에

돈 벌기 힘들더라는 친구같은 동생의 전화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역시 '안가길 잘했다'이다.

그런 조건 드문만큼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겨?

그래도 나는 아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