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사러 갔던 여자가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주인한테 한소리를 들었다.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것이지 뭘 그렇게 뒤적거리냐고...
여자는 목이 잘 늘어나나 바느질은 꼼꼼한가 살폈는데
주인이 신경질적으로 타박을 주는 바람에
보란듯이 앞집 가게에 가서 양말을 샀다고 했다.
가끔 같이 시장에 가보면 물건 고르는 눈이 보통이 아니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야무지게 살피고는 마음에 안들면
그냥 두고 다른 가게로 발길을 돌려버리는 사람이다.
보기에도 좀 심하다 싶어 함께 간 내가 무안해서 뒤꼭지가 뜨끔할 때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과연 그 여자에게 무어라고 말을 해줘야 하나.
속으로는,[어지간했으면 그런 소리 했을까..]
하지만 겉으론 말없이 웃기만 할 뿐 아무말도 못했다.
그런 내 행동에 그 여자는 자기가 옳았다고 손 들어준 것으로 알겠지만
나는 그 사람 앞에서 [당신이 심했다]고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든 나와 마주한 사람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다.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내 입장을 고수하며 남에게 이야기를 한다.
일방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말이 옳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쪽저쪽 말이 틀리게 되고 대질심문이란 말이 나오고
삼자대면이란 말이 나온다.
친구와의 사소한 마찰로 내 마음이라고 편할까.
그런 내게 무엇을 알아내려고 하는지 전화를 걸어오는 친구가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말은 건너갔고 내게 모르는척 하며
확인차 걸어본 것이라고 직감했다.
'왜 그러느냐' 물었을 때'알면서 뭘 그러느냐' 한다면
이미 저쪽 친구에게 들었던 말을 꺼낼지도 모른다.
그건 이렇고 저렇고 니가 이해를 하라던지
그쪽과는 '그래 니를 이해한다'해놓고 나한테는 또 나를 이해하는양
쯔쯔 거릴지도 모른다.
끝내 무슨 말을 들었다고는 하지 않지만 그 친구와도 통화를 했음은 시인했다.
결국 내 입에서 남을 험담하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것인가.
끝내 내 입에서는 아무말도 듣지 못하고
내 탓이려니로 돌리는 말만 들었으니 답답하기도 했을테지.
누구를 탓하고 싶지가 않다.
굳이 탓하자면 내 탓이라고 했다.
원수도 아닌데 이해 못할게 뭐있으며 이해 안될게 또 뭐있겠나.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생각의 차이는 시간이 가야 해결이 될 것 같다.
괜한 파문을 일으킨 것 같아서 친구들 한테는 미안하다.
대표로 내 마음을 전해달라고 했다.
너희들의 좋은 모습만 기억할테니
너희들도 나의 좋았던 모습만 기억해 달라고..
우리가 열한 살 열두 살 시절 이야기를 지금 하듯이
어느날 흉허물없이 나누는 이야기 끝에
나의 어수룩한 모습을 흉을 보아도 좋고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그래도 곳곳한 아이였다고 말한마디 해주면
잊지 않았음에 위로가 되게 해주라고..
그리고 더 흉하지 않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주라고..
내가 살던 고향의 뒷산 언덕에는
지금쯤 아카시아가 활짝 피어 향기 흩날릴텐데...
밟고 밟아 미끄럼자리가 되어 버린
어느 이름모를 무덤가 풀섶 길다란 언덕이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