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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행복


BY 모퉁이 2005-04-14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걷기 딱 좋은 기온이다.

버스를 타면 15분 내지 20분 거리를 지름길로 걸어서 가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40분이면 넉넉하다.

일부러 시간 거리를 재어보았다.

그리고 두어번 실행해봤다.

지난주는 황사가 너무 심해서 버스를 탔고

오늘은 아침 황사가 좀 있다고 했지만

마냥 시간을 죽이고 있기도 그렇고 해서 40분을 걷기로 했다.

 

버스 종점 입구에는 일주일에 한번 오는

잡곡상 아줌마가 벌써 좌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발하려던 버스가 나를 태우려는 듯 주춤거렸다.

탈려고 할 때는 출발해 버려서 사람 멀뚱하게 만들더니

쳇~안탑니다요..메렁~

 

신발 밑창이 얇아선지 걸음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나는 운동삼아 걷는데 버스 속의 사람들이 볼 때는

처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추운 날이나 더운 날엔 별로 할 짓이 못된다.

무엇보다 매연이 괴롭다.

 

아파트 신축 공사장의 소음도 괴로움을 준다만

공사 현장은 활기차 보여서 이해해주기로 했다.

입주하는 사람은 좋겠다며 실쭉대기도 한다.심술이다.

 

한길을 벗어나니 공기가 달라졌다.

야쿠르트 자가용이 혼자 서 있고

야쿠르트를 사려는 사람이 주인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아는 사람인듯 쳐다보며 웃는다.

기다려주고 반겨주고 모습이 참 좋다.

떡집에서 아침에 만든 떡을 포장해서 내놓고 있었다.

빵집에서도 구수한 빵냄새로 내 입맛을 동하게 한다.

미장원에는 이른 손님맞이가 어설프다.

엊저녁에 뿌려놓은 머리카락을 쓸지 않았는지 바닥에 그득하고

이제 앞치마를 두르는 노랑과 보라 염색 머리를 한

젊은 헤어디자이너의 분주함에서 약간 피곤함이 느껴진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털이 꼬불꼬불한 것이

'푸들'이라는 강아지같다.

주인 언니의 보살핌이 극진한지 빨간셔츠에 꽃무늬 신발을 신고

오종종 걸음으로 언니곁을 바짝 붙어 걷는 모습이 귀엽다.

그러나 내 옆으로 올까봐 슬쩍 비켜섰다.

은행에 들러 통장정리를 말끔히 했다.

두 장이 훌쩍 넘어가 정리가 되었고 잔고를 보니 역시나 빠듯하다.

은행 앞에 호떡 리어카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출근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큰길가 신발집도 한 집 두 집 진열대 정리가 시작이다.

속옷 가게 아가씨는 바닥에 채운 열쇠를 열고 있었다.

엎드린 등 뒤로 속옷이 살짝 드러난다.

요즘 젊은이들 바지 밑위가 짧아서 자칫하면 속옷이 보이기 일쑤다.

나는 당체 흘러 내리는 것 같아서 입지를 못하겠더구만.

저짬치에서 리어카 한 대가 움직인다.

아..호떡 할머니 리어카 같으다.

앗~그런데 호떡 장사는 이제 접으셨나 보다.

강냉이 봉지가 리어카에 수북하다.

강냉이 봉지에 얼굴이 가려 내 눈과 마주치지 못해서 인사도 못했다.

아는 분이신지 어떤 남자가 리어카를 같이 밀어주신다.

'고맙슴니더~'할머니 목소리가 맞다.

가방집에서는 털이개로 가방을 털고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 쥬얼리 가게가 눈에 띈다.

자고나면 가게가 바뀌는 바람에 어디가 뭐 하던 가겐지 기억이 어렵다.

화장품 가게 앞이라 그런지 냄새가 향기롭다.

가게 앞에 물을 뿌렸는지 촉촉하다.

화장품 가게를 끝으로 돌아서니 내 목적지다.

건물 입구에 남녀가 커다란 가방을 세워놓고 서있었다.

골프가방같다. 오늘은 필드로 나가는 날인가 보다.

 

엘리베이트 5층을 눌러놓고 1층의 피시방 안을 들여다 봤다.

언제 봐도 컴컴한 것이 빈집 같은데 꾸역꾸역 나오고 들어가는

학생들이 많다.

띠잉~소리와 함께 나를 태우고 갈 엘리베이트가 내려왔다.

2층은 모르겠고 3층은 찜질방이라 했고 4층은 가끔 의료기 행사장으로 사용했었다.

할머니들이 많이 오셔서 무슨 구경을 하시는지

돌아가실땐 저마다 화장지며 선물꾸러미를 들고 가시는 것을 봤는데

요즘은 조용한걸 보니 행사 마감했나보다.

또 다른 곳에서 할머니들 주머니돈 쌈지돈 긁어 내고 있겠지.

슬리퍼 한켤레에 23만원을 주고 샀는데 그게 글쎄 어디어디에 좋다면서

겨울에도 그 슬리퍼를 신고 오신 할머니가 계셨다.

누가 물어보기나 했나..내가 할머니 슬리퍼를 쳐다보는 줄 알고 그 할머니가

해명하다시피 내게 하신 말씀이니 알지.

 

5층은 내가 가는 곳 볼링장이다.

또래 엄마들이 선수급은 못되고 재미삼아 하는 볼링클럽인데

매주 한번씩 만나 세워진 열 개의 핀을 미운넘 뒤꼭지라 생각하고

확 쓰러트리며 일주일 동안의 화풀이나 하자는데

화풀이 하려다 헌날 화를 안고 가는 날도 많다.

핀이 제대로 맞아줘야 말이지..

 

오늘은 제대로 맞아줘서 걸어서 온 보람이 있었다.

누구 뒤꼭지라 생각지 않고 그저 나한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의

가슴에 꽂는 큐피트라 생각했다고 말했다가 된소리 한마디 들었다.

주책이라는 둥,닭살 돋는다는 둥..그래도 좋다.

 

네 게임을 던지고 나니 아침 7시에 먹은 밥의 소화 시간이 지났는지

속이 울렁대는게 배고픔 증상이 느껴진다.

1900원짜리 비빔밥도 마다하고 얼른 집에 와서

아침에 먹다 남은 오징어볶음에 찬밥 볶아 김장김치 쭉 찢어 먹으니

성찬이 따로 없고 포만감에 행복감에 기분이 째진다.

차비 800원에 점심 1900원이니 합이 2700원을

오겹살 개업집에서 얻은 분홍색 돼지밥통에 넣으니

돼지도 빙그레 웃는다.

행복이 별건디..

잠시의 만족이겠지만 가끔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행복이란 단어를 찾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