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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면


BY 모퉁이 2005-04-11

남편도 이제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았습니다.
사오정,오륙도란 대명사가 서글픈 세대이기도 합니다만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남편은 굳건하게 오늘도 출근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정말 고맙습니다.

요즘은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씩 나눕니다.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향도 옛날의 고향이 아니어서 돌아갈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어디서고 자리잡고 정 붙이면 고향이 되겠지요.

고향에서도 농사를 짓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호미자루도 잡아보지 못한 남편입니다.
그런 남편과 주말농장을 신청했습니다.
작년에 이미 시작된 농장에 답사를 했는데
곱게 자란 푸성귀가 농부의 땀방울을 짐작케 했습니다.

호미도 한 자루 사야겠습니다.
고무장화도 한 켤레 준비해야겠습니다.
챙이 넓은 모자도 하나 눈여겨 봐야겠습니다.
몰조리개는 빌려준다했지만 꽃화분에 물주던 조리개라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슈퍼 개업에서 얻어온 커다란 소쿠리가 요긴하게 쓰일 것 같습니다.
자동차 트렁크에는 흠집 생긴 은빛돗자리도 하나 챙겨둬야겠습니다.
아직 파종도 하지 않은 텃밭에 마음은 미리 가있습니다.


'상추도 심고 파도 심고 깻잎도 심어야지.
두렁에는 옥수수를 심을까 싶은데 찰옥수수가 될까?
방울 토마토를 심어볼까.케일을 심을까.
풍성하게 자라면 뜯어다가 삼겹살도 싸먹고,겉절이도 해먹고
갈아서 즙도 내먹고,내가 좋아하는 아우네도 갖다줘야지.'
두평 남짓한 텃밭에 심을 것도 많고 줄 사람도 많습니다.

어제도 포근하더니 오늘은 더 맑습니다.
베란다 창 앞에 걸려있는 목련가지에 털붕숭이 망울이
아직은 입을 꼭 다물고 앙큼하게 새침떱니다.
저 목련이 입술 여는 날이면 봄이 왔을테지요.
개나리 진달래가 옷 갈아 입을 즈음이면 봄이 낯설지 않겠지요.
봄이 오면 나는 초보 농군이 됩니다.
씨뿌리고 흙 다듬으며 십 년 뒤를 그려볼 겁니다.
내가 어느곳에서 농사를 짓고 살 지,
손주를 돌보며 살 지는 모르지만 십 년 뒤에는 
오늘 봄을 그린 마음이 노래되어 흥얼거리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십 년 뒤에도 우리에겐 봄은 올테니까요.

2005-03-22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