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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거노인


BY 모퉁이 2005-04-11

몇해전에 독거노인을 돕는 자원봉사를 신청한 적이 있습니다.
두 명이 조가 되어 홀로 계신 노인을 돕는 일이었는데
처음에 제가 맡은 분은 환갑이 지났다는데 아직 정정하셨고
-하긴 요즘 환갑나이가 많은 나이도 아니지요.-내가 도울 일이
없었습니다.그래서 다른 분을 해달라고 했더니 여든이 넘으신
내외분이셨는데 바깥어른은 귀가 잡수셨고,안노인은 치매끼가 있어서
세명을 일조로 하여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학자셨는지 직접 저술하셨다는 책도 서재에 꽂혀
있었고 벽에 걸린 액자의 글씨가 보통이 아니셨습니다.
할머니 역시 손도 곱고 얼굴도 무척 고운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몹쓸 치매가 사람을 사납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처음에 주어진 일은 말벗이나 해 드리고 간단한 집안 청소나
하면 된다고 했지만 말벗도 어려웠지만 집안청소도
이사집 청소만큼 일이 많았고,할머니 목욕시키는 일도 만만찮은것이
할머니가 떼를 쓰고 아프다고 소릴 지르면서 화를 내실땐
혹여 꼬집기라도 한듯하여 무안할 정도였습니다.

할머니는 집안에 있는 물건에 손을 못대게 하십니다.
냉장고며 방이며 청소를 할라치면 뭐 훔쳐간다고 소릴 지르시고
쓰레기를 담아도 그러십니다.도둑년(?)이라고 하시질 않나
지팡이로 볼기짝을 치지 않으시나,,,
그래서 한명이 할머니 목욕을 시키는 동안에 집안청소를 하고
버릴건 버리고 몰래 해야 됩니다.

주방 천정에 바퀴벌레가 기어가길래 빗자루로 내리쳤더니
바퀴벌레가 날 잡을려고 합디다.
옆에 있던 킬라를 뿌렸다가 혼비백산 하는 줄 알았습니다.
어디에 숨어있었던지 작은 바퀴가 와글와글 기어나오는데
이건 빗자루도 킬라도 소용없었습니다.
완전 벌집을 쑤셔놓은듯 했어요.

이 일은 우리 힘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것 같아서
동사무소에 알리기로 하였습니다.
연막을 하던지 대대적인 소독을 해서 바퀴벌레 박멸작전을
벌여야 될 것 같았거든요.

이사가는 사람이 버리고 간 서랍장이라면서 주워 놓았다고
거기에 옷들을 챙겨 넣어 달라고 하길래 옷장 서랍을 여는데
나무가 썩어서 벌레랑 톱밥가루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옵디다.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을 집안에 갖다 놨으니 이제
이 물건을 버리는데 드느 비용만 안게 된 꼴이 된겁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그 물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고
못을 박으면 안되겠냐,어째 잘 맞춰보라,주문을 하시지만
그 서랍장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자꾸 주저 앉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서랍장을 밖에 내다놓아야 되는데 이번엔 할머니가
야단이십니다.왜 들고 가냐는것이지요.

정신이 맑은 어떤 날은 그러십니다.
일을 해줘서 고마운데 돈이 없어서 어쩌냐고..
먹다 남은 설탕을 한숟갈 퍼서는 이거라도 먹으라고,,,
할머니는 설탕을 머리맡에 두고 잡숫고 계셨더랬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은 늘 끈적거렸습니다.

우리도 김장을 한 번 했었네요.
혼자 계시는 할머니댁에 갖다 드리고 오던 날.
그날 나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사실은 저의 친정어머니가 그 분들과 다를바 없는 생활을 하십니다.
딸을 다섯이나 두었지만 엄마는 혼자 사시거든요.
김장철이면 동사무소에서 김장을 해서 몇포기 갖다 주더라고 하실땐

 노인복지차원에서 하는 것이니까 받아도 괜찮다고 하였지만
내 엄마는 남의 사람 손에 맡겨두고 나는 또 다른 할머니의
수발을 든답시고 내 잘난 웃음을 흘리지 않았는지 반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를 돌보는 일도 오래 하지 못했네요.
이사를 해야했고 할머니댁 가까이가 아닌 곳이어서
좋아하시던 박하사탕과 야쿠르트 몇 병 사들고 마지막 찾아뵙던 날
밥먹고 가라던 할머니의 작은 목소리가 한참을 맴돌았습니다.
이사온지 5년차.
할머니는 잘 계신지..



 

2005-03-10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