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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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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세상


BY 모퉁이 2005-04-11

시동생과 동서는 괜찮은 살림이었다.

늦은 결혼이었지만 한참 먼저 결혼한 내 살림보다 더 윤택했고

그래서 소외감 느끼고 내 살림이 짜증난 적도 있었다.

몇 년 쓰지 않은 장롱과 가전제품을 대형으로 바꾸던 날은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그러던 시동생네가 IMF에 치명타를 입었다.

은행 합병이 시작되자 동서는 명퇴 1순위에 들었고

시동생 역시 IT산업에서는 퇴출선발대였다.

동서의 명퇴자금은 집 하나 장만하고 시동생 사업자금에 들어가고

그러기를 몇년 버둥대다 집 하나 남기고 돈은 물센듯 사라지고

지금 시동생은 그야말로 내리막길 막바지까지 와 있다.

 

도배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칼질하고 풀칠하고 힘들게 일했다.

'0 이사님'에서 '0씨 아저씨'로 전락했다.

 

컨테이너 기사로 일했다.

2~30년 이상 경력자들과 겨루기가 쉽지가 않았다.

대형 컨테이너를 움직이려니 하루 이틀 경력으론 어림없다.

 

와중에 수시로 유혹의 입김이 들어왔다.

배운 도둑질(?)이 있었고 하던 일이라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은

막연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고시원에 파묻혀 연구하고 개발하고

사람을 만나 영업하고 구두가 닳는지도 모르게 일을 했다.

결과는 시원찮았다.

 

보험 설계사로 들어갔다.

새로운 개척이고 모험이고 전략이 필요한 일이다.

그동안 익혀놓은 얼굴들은 많았지만 냉정들 하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만나기가 더 어렵다.

혹시 보험 들라할까 싶어 경계를 한다.

소주잔에 설움을 타서 마셨으니 취기는 독하다.

 

그런 세월이 벌써 몇 년인가.

어제 갑자기 시동생이 올라왔다.

가끔 오긴 하는데 올라 오면 매번 우리집에서 거하게 한다.

없는 찬이지만 바깥 음식보다야 나을 것 같고

좁은 집이지만 익숙한 사람냄새가 따뜻할 것 같다.

 

지난번 보다 머리숱도 줄어든 것 같고

얼굴이 핼쓱한게 야위어 보인다.

어디 아픈게 아닌가 걱정되었다.

몸은 괜찮으데 마음이 허하다고 웃는다.

 

이번에 또 IT쪽 프로젝트를 제의 받은 모양이다.

무지개빛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잘 하면..잘 되면..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제시하였으니

갈등이 많은가 보다.

이젠 무작정 덤벼들 때가 아니다.

신중하고 차분히 생각해 보라는 말 밖에 더 보탤 게 없어 안타깝다.

 

안되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이 택시기사라고 한다.

그 일이라고 만만하고 쉽겠는가만은

밑천없고 몸뚱아리로 할 수 있는 게 뭐 있겠냐고 하는데 속이 터진다.

 

때마침 오늘이 조카넘 중학교 졸업식이란다.

남편 노릇도 못하고 애비 노릇까지 충실치 못한다면서  실없는 웃음을 웃는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들고 총총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발자국 소리는 멀어지고 대화 중에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이 눔의 세월은 왜 이리 잘 가는거야..?"

 

해야 될 일은 많이 남았는데 할 일은 갑갑하고

시간은 하릴없이 물살처럼 흘러가고 있으니

죄없는  세월만 미움 받는다.

에효....힘든 세상이다.

 

 

 

 

 

 

 

 

 

2005-02-17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