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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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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없는 남자와 설움타는 여자


BY 모퉁이 2005-04-11

괜히 엉덩이가 가려웠다.

생각해보니 목욕탕 다녀온 후 같다.

혹시 피부병이 옮았나 아니면 심각한 병이라도...?

 

그렇다고 바로 득달같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날쌘돌이가 아니고

참을만큼 참아보고 하루이틀 지나면 나으리란 믿음을

져버리지 못하는 미련하고도 미련한 곰같은 여자다.

몇번 그 미련에 당해놓고도 아직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정말 미련한 여자.

 

근 열흘을 긁어대다 피부과로 가나 산부인과로 가나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산부인과에 가서 보여주기로 했다.

여차저차해서 왔노라 하니 자궁암이며 유방암 검사는

어느시절에 했었는지 캐묻는다.

작년 초에 했으니 아직 1년은 안되었다.

 

이왕 와서 보이는 김에 자궁암검사까지 해보기로 했다.

헐렁한 치마로 갈아입으라 하더니 하기 싫은 포즈로 누우라 한다.

눈 앞에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한다.

양호한데 물혹 하나가 생겼으니 그걸 고주파로 지져내는 치료를 하란다.

없어야 되는 것이 생겼으니 신경쓰인다.

가려움증 때문에 병원 왔다가 엉뚱한 진단을 받게 되었다.

가려움증은 염증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뽀두락지라 했다.

피곤하면 입술이 부르트는 증상과 같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된다.

마침 토요일이라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어제) 치료를 받기로 했다.

 

병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다.

이만저만하여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혹시 오진일지 모르니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그림을 보여줬는데 정상과 다른것 보니 오진은 아닌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토요일이 저물고 일요일 낮에

제부도라도 다녀올까냐고 묻는데 왠지 떨떠름한게 나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자꾸 짜증이 나고 만사가 귀찮고 말끝에 짜증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월요일,출근하는 남자가 아무말없이 나간다.

아침마다 하는 인사도 건성으로 했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는 말 한마디 쯤 할 줄 알았는데 빈말도 없다.

혼자 병원에 갔다.

아이 낳을 때에도 조산원에서 낳았기에 수술실이란 곳에 들어가본 기억이 없다.

5분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라 했지만 수술은 수술이라 긴장되었다.

 

쇠붙이 소리가 덜거럭 거리더니 약간 따끔하고 쓰린 느낌이 들더니

말처럼 금방 간단히 수술은 끝났다.

혹시 회복실이란 곳에 30분 쯤 누웠다 가야 되는 줄 알았는데

주사만 한 대 놓고 바로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몇가지 주의사항은 있었으나 적어와야 될 정도도 까다로운 것은 아니었다.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회복실에서 누웠다 나온 어떤 여자는

뒷머리가 부시시 한게 얼굴색도 밝지 못했다.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여자는 남편이 대동해줘서 수납도 하고

코트도 입혀주고 하더니 약국에서 또 만났다.

이번엔 영양제를 한통 사면서 꼬박꼬박 잘 챙겨먹으라고 아내를 토닥여준다.

 

이틀치 약을 받아들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왜그리 서글프던지..

아침에 나갈때도 말한마디 없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전화도 한 통 없고..이런 남자가 미워서 보일러 잔뜩 올리고 드러 누워서

온갖 심드렁을 해대면서 내 속을 끓이고 있어 본들

저녁 시간은 누가 부르듯이 꾸역 다가와서 쌀을 앉쳐놓고 쉬운대로 김치찌개도 끓였다.

시원한 미역국이라도 끓였으면 싶은데 내 손으로 끓이기는 싫었다.

 

늦지도 않고 제 시간에 와주긴 했다.

말없이 저녁을 먹고 설겆이 하고 엎드려 주방 바닥을 닦는 동안

아침에 보다 만 신문을 펼쳐들고 정신을 쏟고 있다.

보통날엔[오늘 뭐했냐?]고 묻기도 잘하더만

날따라 묻던 인사도 없다.

 

'마누라가 하는 말은 귓둥으로 듣는게야.

분명히 월요일날 물혹 수술 하러 간다고 얘기를 했거늘

그새 까먹은게야.아니..그런 말 한 것 조차 모르는게야.'

 

이쯤에서,

'오늘 수술을 했는데 생각만큼 아프지도 않았고 간단한 수술이었어.

그래도 수술은 난생 처음이라 긴장이 되더라.'

이렇게 털어놓기라도 하면 될 것을 이눔에 자존심인지 말막힘인지는

한번 발동이 걸리면 입에 냄새가 나도록 말문이 닫혀버리니 나도 참 고질병이라.

 

초저녁도 한참 초저녁에 일찌감치 자리 보존에 들어갔다.

낮에도 한참 누워 있어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한번 묵은 감정이 쉽게 풀리지 않아서 억지로 눈을 감고 자는척도 해보고

뒤치락 거리는 시늉도 내보고 괜히 화장실에도 가보고

그래도 남자는 생각이 나지 않았는지 아무런 질문이 없다.

 

OCN에서 무슨 재미난 영화를 하는지 12시가 넘도록 영화를 보고설랑

그때서야 슬그머니 눕더니 손을 찾아 더듬는다.

자는척 하다가 몸부림 치는 시늉으로 손을 뿌리치고 돌아 누웠다.

이차로 팔베개가 들어왔지만 꿈쩍않고 있었다.

그러다 어쩌다 잠이 들었는지 알람이 울린다.

보통 날은 알람이 울고도 10여분은 꿈지락 거리는데

오늘 아침엔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나서 이른 아침을 했다.

신문도 훑었다.

밥이 굳을 지경이었지만 깨우지 않았다.

허둥대던 말던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무관심했다.

속옷과 양말을 챙겨서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조용한 가족의 조용한 아침식사가 끝나고

신문 볼 시간도 없이 출근할 시간이다.늦잠을 잤으므로..

현관앞에서 나를 기다린다.

'왜?'

'이 사람아~ 얼른 와라.늦겠다.'

남편이 출근하는 그날까지 하기로 한 아침인사가 있다.

입맞춤이다.

오늘도 건성으로 했다.

왜 그러느냐고 한다.

 

마누라 말은 귓둥으로 듣냐에서부터 한꺼번에

서운했던 말문이 트여서 그만 홍수가 나 버렸다.

 

어허~당황한 빛이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어째보니 되려 화가 난 얼굴같기도 했다.

대답도 없이 휭하니 출근길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몇일 치료를 받아야 된다해서 오늘도 병원에 갔다.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 없다.

평소에도 특별한 연락사항이 있잖으면 안부 전화는 안한다만

그래도 점심 시간쯤에는 한번 연락이 있을 줄 알았다.

 

오후 세시쯤 되었을까.

훌라후프를 돌리고 있던 아이가 전화를 갖다준다.

 

[약은 묵었나? 괜찮나?]로 시작한 목소리는 능글스럽게도 웃고 있었다.

사무실 분위기도 있고해서 가타부타 언짢은 소리는 나도 삼가했다.

그런데 전화한 이유가 글쎄..

아주버님이 이번에 졸업하는 딸래미한테 뭘 하나 사주라고

송금을 하고 싶다시니 통장 번호를 가르쳐 달랜다.

아이구~그럼 그렇지..

내가 더 뭘 바래.

그리곤 저녁에 회식있다는 말까지...

다음 말이 아니었음 전화기 던져버리고 싶었다.

[걱정된다.약 먹고 쉬고 있어라]

 

어쩜 이렇게도 마누라 마음을 모르는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만 아는 눈치 없는 남자.

마누라 기압이 저기압이면 해일이 인다는 것을 모르는 간 큰 남자.

그 저기압이 바로 자기 때문이라는 것은 더 모르는 남자.

그러면서 살아온 세월이 20년이건만

요즘 들어서는 자꾸 나를 챙기고 싶어지고

나를 찾고 싶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나의 억지일까.아님 갱년기...?

괜한 설움에 이틀을 허비했다.

 

 

 

 

 

 

 

 

2005-01-25 1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