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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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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살이 기억


BY 모퉁이 2005-04-11

엊그제 비가 오던 날.

날궂이식을 거창하게 하였다.

다른것은 몰라도 수제비 반죽 하나만큼은

자신있게 한다.자랑같지만 사실이다.

그렇지만 맛나게 끓여내는 것은 부족하다.

하여튼 그날은 수제비로 날궂이를 했다.

평소에 얻어먹은 죄를 한꺼번에 갚아버렸다.

 

옹기종기 모여앉아도 꽉 찬 느낌이 드느 좁은 식탁에서

후식삼아 내놓은 것은 그 옛날의 셋방시절 이야기였다.

나이 한두 살 차이들이 나니 살아온 연륜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고 생활수준도 비슷비슷해서

10년 전이나 20년 전의 이야기를 해도 바로 내 이야기다.

 

지금도 한 달 월급에 의지하며 사는 신세기는 하지만

그때는 월급날은 더디오고 방세 내는 날은 참 빨리도 다가왔다.

월급을 받으면 연탄과 쌀과 양념을 미리 비축하는 것으로

한달 계획이 짜여진다.

 

이사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아이가 몇이냐였고,가전제품이  많다는 것도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어쩌다 주인을 잘못 만나면 전기세며 수도세를

착취(?)당하며 살기도 했다.

영수증이란 것도 없이 그냥 얼마 내라고 하면 내야했고

나중에 알고보면 주인은 물이며 전기를 공짜로 사용하는 얌체주인도 있었다.

 

광 하나에 쌓아둔 연탄도 가끔 줄어들었지만

심증만 굳힐뿐 물증이 있어도 내색도 못했다.

 

빨랫줄 하나에 일찍 너는 사람이 임자라고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고 나서 빨래를 하면

그땐 이미 우리 빨래 널 자리가 없다.

어쩌다 일찍 빨래를 널어놔도

내가 널어놓은 빨래는 저만치 밀치고

자기네 빨래를 집게 두개씩 집어 널어놓기도 했다.

 

어쩌다 급한 전갈이 올때는

주인댁 안방에 있는 전화를 받으러 가야했는데

마침 식사중이거나 여름날 낮잠 자고 있을 땐

미안키도 하지만 제대로 내 의사를 전달하지도 못하고

네네..받기만 하였던 적 있다.

 

냉장고는 추석이 지나면 볕좋은 날 깨끗하게 목욕시켜서

요즘의 에어컨 카바보다 질이 좀 낮은 냉장고 커버를 덮어 씌워서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부엌도 아닌 방 한쪽 구석에서 장승처럼 서 있기도 했다.

 

어쩌다 마련한 청소기는 소리가가 크고 심해서

주인 할머니 외출한 틈을 타서 생생 돌려보고

부엌 천정이 바닥인 다락에 올려놓고 몰래 사용하기도 하였다.

 

세탁기가 있어도 탈수용으로만 사용했다는 사람도 있고.

연탄을 아무리 떼어도 방이 따뜻하지 않아 알고보니

연탄고래가 주인댁 방을 지나더라는 사람도 있었고

겨울에 땔려고 사다놓은 연탄이 장마통에 폭삭 내려 앉았다는 사람,

화단에 꽃잎 딴다고 호통을 쳐서 아이를 종일 방에 가두어 두고 슬펐다는 사람,

손님이 많이 다녀간 달에는 물세도 더 내라는 주인,

참,,그러고 보니 화장실 푸는 값도 식구 머릿수 대로 낸것 같다.

몸 풀러 친정 다녀오니 고추장 단지가 비었더라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나 좋은 주인을 만나서 셋방살이 설움은 없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복일테지..

 

지금은 그렇게 살라면 못 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 정도나마 누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20년을 헛되이 살지는 않은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허허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풍족하게 시작한다.

가전제품도 대형에다 없는게 없고

집도 아파트 몇 평부터 시작하니 우리네 그 시절의 셋방살이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의 고전동화쯤으로 여길테지.

 

물질은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좋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매사 풍족하기만 한 사람은 없을 때에 무척 비참해진다.

조금 부족한 듯 시작한 사람은 채워가는 의미와 즐거움을 안다.

 

어제 그 부족함을 알기에

오늘의 이 만족감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셋방살이의 경험은 나에게 또 하나의 삶을 가르쳐 준 생활지침서이다.

 

 

 

 

 

 

 

 

2004-07-09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