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주 4.5일 근무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154

시조부모님을 그리며


BY 만석 2025-04-18


오늘은 媤祖父母(시조부모)님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내가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도 마쳤으나, 아직 신혼집이 비워 지지를 않아서 한 달 동안 시골의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웃에서 초상이 났었다. 오늘이 발인이라서 온 동네가 초상집에 몰려가고, 나는 시어머니의 엄명으로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마음같아서는 뛰쳐나가서 상여 뒷꽁무니를 따라가며 구경하고 싶었으나, 새색씨는 조신해야한다는 친정어머니의 이름도, 시어머니의 이름도 모두야속했다.

방울소리가 요란하고 상여꾼들의 흥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아주 가까운 이웃에서 초상이 난 것이 확실했다. 고개를 빼고 발뒷꿈치를 올려봐도 상여는 보이지가 않았다. 그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나는 놀라서 우물가의 담장 사이에서 잽싸게 눈을 멀리했다.
"아가. 아기 어디 있냐? 이리 와서 구경해라."대문을 들어서는 할아버지는 벌써 내 마음을 읽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귀골이 장대한 등에 얼굴을 숨기고 상여가 성황당고개를 넘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내가 결혼을 할 때에는 이미 시조모님은 作故(작고)하신 뒤였다. 시조부모님은 슬하에 여섯명의 아드님을 두셨었다 한다. 그러니까 내 영감은 다섯명의 삼촌이 계셨던 터다. 그 중 나이가 어린 차례로 세명의 삼촌이 6.25전쟁 중에 입대를 한 모양이었다. 내 영감의 체격을 미루어 짐작하건데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육척장신에 뼈대가 굵어 귀골이 장대한 형제들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내 영감은 어려서부터 삼촌들의 힘을 믿고, 동네에서 아무도 근접을 하지 못하는 귀한 도령으로 행세를 하며 자랐다고 한다. 아항~. 그 때부터서 그 못된 도련님 행색이 몸에 배였었구먼.

그러나 남들의 시샘이었을까. 입대한 세분의 삼촌은 부대가 전멸을 하는 통에 모두 전사를 하셨더란다.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더라도 더욱이 시조모님의 명을 재촉했던 이유가 충분했겠다. 특별한 병도 없이 앓다가 돌아가셨다 하니 왜 그렇지 않으셨겠어. 탈 없이 오래 살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세 아들을 그렇게 고스란히 나라에 바치고 시조모님은 다믄 몇 해라도 어떻게 명을 이으셨을꼬. 반은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곡기를 끊었어도 그래도 살더란다. 가엾은 시조모님. 뵙지는 못했지만 뵌듯이 눈에 선하다.

두어 달 전에 국방부에서 전화가 왔다. <6.25전쟁 무공훈장 주인공>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동안의 여차저차한 이유야 있었겠지만, 이왕이면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여서, 직계가족이 해택을 받게할 수는 없었을까. <금성화랑 무공훈장>. 받아들기도 민구스러운 훈장을 들고, 긴 시간 눈물로 지내셨을 내 시할머니를 그려본다. 상각할 수록 가엾고도 가엾은 양반이다. 다섯 아들을 기르실 때 그 위풍이 얼마만큼 당당하셨을까. 훈장과 무공훈장패를 거실의 가장 밝은 곳에 자랑삼아 펼쳐 놓았다.시조부모님삐까뻔쩍한 훈장을 올리고 싶었는데, 요상하게 사진이 올라가지를 않네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