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교감신경이
동물에게는 본능적으로 작용하는가 봅니다.
바삐 하루를 살다 보면
어찌 점심이 지나갔는가 어찌 저녁이 다가왔는가 싶고
아들녀석이 현관문을 탕탕 치는 소리에 '아, 벌써..' 하는데
록희가 함께 살고 부터는 그 시간관념 이라는 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훤히 잡히더라는 겁니다.
가령,
이 녀석이 닫힌 욕실 문앞에서 낑낑거리거나
열린 욕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면(응가~)
한치 틀림없이 오전 10시쯤이라는 거고
그림자를 달리하며 자리를 살풋 옮겨앉는 햇살을 향해
장난처럼 짓기 시작하면 정오를 오분 정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시간이
이제 점심 준비해서 배를 채우시오~ 할 때고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귀를 바짝 세우고 있으면
어김없이 아들녀석이 집에 돌아오는 오후 4시가
록희의 등 위에 동그마니 앉아 있고
제 바지를 물고 자꾸 부엌쪽으로 가자는 시늉을 하면
록희의 저녁밥을 챙겨줘야 하는 저녁 6시쯤이라는...
이러니 처음의 귀차니즘 발동과는 달리 어찌 안 이쁘겠는지요
(가끔 엉뚱한 곳에 쉬를 해서 발바닥 적시는 일 말고는)
용돈을 주면 이것저것 이쁜 학용품 사느라 바쁘던 딸애가
이즈음엔 록희 옷이며 장난감 사 나르느라 맨날 돈 뜯어갈 궁리만 하는지라
왠만하면 모르쇠로 일관하던 강릉댁이도
요 며칠 전에는 모른 척 파란 배추 한 장을 스윽 찔러넣어줬지요
오늘이 바로 요녀석이 태어난 지 딱 일년 째 되는 날이라요^^*
딸애가 파란 배추 한장을 요긴하여 썼더만요
조그맣고 앙증맞은 케잌에 연분홍 초 한자루.
록희의 눈망울 처럼 이쁜 별이 새겨진 멋진 옷 한 벌.
집안에 전등을 모두 끄고 케잌에 불을 붙이자
반짝이는 건 록희의 까만 눈망울과 촛불의 일렁임이었지요
딸애랑 록희가 훅 불어 촛불을 끄고
새로 사온 옷을 입히고 아들녀석의 생일 때 쓰고 옷장 위에 올려놓았던
빨간 고깔 모자를 씌우고 꼭 끌어들 안고 사진 한장 찰칵^^*
지금처럼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한 얼굴로
우리 식구와 내내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
2004.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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