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듯 조심스런 건 둘째 치고
도대체가 다들 록희 땜에 분위기가 들떠 있다
작은 녀석은 학습지를 하다가도
강아지 한번 더 만져볼려고 괜시리
물마시러 나왔다고 핑계대고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있지를 못하고
큰애는 큰애대로 시험공부는 뒷전이고
록희 발톱이 길었네, 털이 자라 눈이 안보이네
오줌 누일 시간이네, 밥먹일 시간이네
들락날락 정신 사납고
남편은 퇴근하기 바쁘게 아예
록희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산다...^^
그런데 어젯밤에 강아지를 안고
자꾸만 들낙거리는 아이들을 아빠가 나무라자
그런 아빠를 한참 보던 작은 녀석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부엌에서 지켜보던 내 가슴에 순간 '쿵'하고 울리던 무엇.
[아, 그렇구나....아이는 지금 질투를 하는구나
자신이 동물을 사랑하는 감정 표현과는 또 다른...]
조용히 아이를 불렀다
쭈삣쭈삣 다가오는 아이의 눈은 벌써 물기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힘주어 아이를 꼭 안아주었더니 아들녀석이 애써 울먹거림을 거두고
이 엄마 귀에 속삭인다
"엄마, 아빠가 나 안아준게 언젠지 잘 기억이 안나".
그랬던가. 항상 자는 아이 이불 매무새며 방 전깃불 소등까지
일일이 점검하는 자상한 아빠지만 속정만 쌓았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니 이 엄마만 진득한 사랑을 알아챘지 아직 어린 아들녀석이
그 사랑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을까.
"그래, 이 엄마가 이제 얼마든지 많이 안아줄께. 그럼 됐지?"
"응, 이젠 됐어 엄마. 이제 공부해야지..."
환하게 얼굴을 펴고 지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평상시에 내가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인색하고 서툴렀는지...
학교 갔다 오면 간식챙기고 학원시간 맞춰 차 태워 보내고
학습지 점검 해주고 하는 그런 일련의 의무와 무의식적인 행위를
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라 착각하고 살았던 거라는걸.
잠자리에 들면서 남편에게 조용히 아이의 반응을 얘기했더니
오늘 아침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찾는 록희(강아지)를 뒤로 하고
자고 있는 아이의 방으로 먼저 발을 옮겼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쪽이 쏴아~하다.
그래, 행복은 바로 이렇게 하나씩 일궈가는거겠지...
아침에 지 아빠가 저를 꼭 안아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녀석은 일어나자 마자 록희야~~록희야~~를 연방 외쳤다.
2003. 05.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