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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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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BY 최지인 2006-05-10

어제  늦은 오후의 퇴근길.

흐린 하늘이 잔뜩 내려앉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리를 적시겠다 싶어 마음이 조급한데

 

마악 육교를 두계단씩 뛰어 올라가다 말고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방을 추스리다 흘깃 돌린 시선안으로

가슴을 실키며 와 박히던 광경

 

부산진역을 향해 서서

묵묵히 세월을 걸어온 오래된 5층 건물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신축을 위한 허물기가 한창인데

이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 골조의 2층에서 비둘기 소리가 요란도 했다.

 

건물 난간 한쪽에 둥지를 튼 비둘기 한 쌍이

2개의 알을 번갈아 품으며 한창 작업을 진행하는 인부들을 향해

날카로운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 생존의 여부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둘이서 지치도록 나고 들며 인부의 주위를 선회하는 저 몸부림이라니

둥지와 새끼를 지키려는 노력이 눈물겨워서일까

열심히 일을 하던 인부들이 잠시 철거를 멈추고

다들 아래로 내려와 담배를 피워물며 한마디씩 날린다.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육교 중간에 선채

자꾸만 아저씨들과 비둘기 가족을 기웃거리니

바삐 지나던 사람들도 잠시들 멈추어 함께 눈길을 보내었다.

 

 '저를 어쩐댜..오늘 밤부터 비가 억수로 내린다는디...'

집에 오는 내내 걱정이 되었다. 내릴 비도 비겠지만

새알이 무사히 부화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해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 둥우리를 옮길 수도 없는 일이고

이 도시에 마땅한 장소도 장소려니와 비둘기의 습성상

자리를 옮기면 다시 알을 품을 것 같지도 않고..

 

기우였음 좋겠다 싶었지만 저녁무렵부터 듣기 시작한 비는

아침 출근길엔 바지 밑단이 흠뻑 젖을만치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말자

새둥지부터 찾았다.

 

아, 있다!

부부 중 한 마리는 어디 먹잇감 구하러 갔는지 안 보이고

한 마리가 흠뻑 비에 젖은 채로 알을 품고 있는게 아닌가.

너무 쫄딱 젖어서 처절해보이기까지 하는 몰골로

견딜수 있는 극한의 경계까지 가 있는 듯한 자세..

순간, 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참지 말아야지..저 숭고함 앞에서라면.

 

한계는 누구에게나 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 얼른 떨구었다.

어쩌면

나를 스쳐갔던 수많은 한계들을 향해서..

 

퇴근시간이 많이 기다려진다.

이젠 비 그치고 엷으나마 해가 떴으니

밤새 비에 젖어 떨던 비둘기 부부가

이젠 사이좋게 앉아서 깃을 말리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