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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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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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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차려준 밥상은


BY 최지인 2006-05-08

 

새벽 6시.

핸드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요즘들어 우리 부부의 잠자리에 끼어 든 아들녀석이

자꾸만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밤새 잠을 설치다 새벽녘에야

깊은 잠에 빠졌더니 일어나기가 몹시 힘들다.

 

새로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니

내 신상의 피로함 따위야 어디 깐죽이나 댈 수 있으랴

끙, 힘을 주어 일어나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며 방을 나서니

 

세상에..!

어머나 어머나 ..저게 다아 무슨 일이래..^^

부엌에선 벌써 김치 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색색이 야채가 이쁘게도 들어간 계란말이가 마악 썰어지고 있는 중이다.

시험 친다고 딴에는 고생고생한 딸애가

어제 딱 하루 쉬고는 새벽부터 요리를 하고 있다.

이제 겨우 고 1인 딸애가 벌써 저렇듯 어른스럽다.

 

작년 어버이날엔 누드김밥을 싼다고 새벽 4시부터 야단법석이더만

오늘 새벽은 5시에 일어나서 시작했단다.

- 아띠, 아직 준비 덜 됐단 말이야  얼른 들어가서 더 자라구용~~

딸애가 등을 떠다밀어 다시 방으로 밀려들어왔다

닫히는 등 뒤로  부엌에서 묻어온 얼큰한 김치 찌개냄새가 방안을 둥실거리며 떠다닌다.

조금만 더 잤으면 하던 마음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말똥해진 정신이 눈물을 찔끔거리며 음식 냄새를 따라 동동거린다.

 

아직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남편의 옆구리를 꾹꾹 찌르자

- 어허, 아침부터 왠 신호등은 켜고 그리여..내 지금 허리 안좋은 거 니 모르나?

허걱^^

-이 봐요, 아자씨 내는 그런 신호 같은 거 보낼만큼 팔팔하지도, 마음도 없네유..

눈은 자도 좋은데 코만 살째기 한 번 깨워보드라구유~~아무래도 울 집에

연속극에나 있는 우렁각시가 있는가벼요오~~

 

58년 개띠 울 아자씨.

확실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아서

- 으잉? 아침 잠 많은 니가 오늘은 우짠 일이고

하다가  아직 잠옷을 걸치고 있는 나를 보더니 벌떡 일어난다.

소리를 죽이며 문을 열어 본 남편 입이 떡 벌어지더니

-  으흐, 야, 봐라봐라..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는 감동으로 배채우것다야..

 

둘이서 이불 속에서 먹을만큼 감동으로 배불리고

조용히 일어나서 살째기 이불 정리하고 안방 화장실에서 씻고 나니

드디어 딸애가 방문을 똑.똑.

-엄마, 아빠, 빨리 나온나~~!

 

사실,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놨는데 맛은 쫌..^^

하지만 계란야채말이는  지 엄마보다 한 수 위인 것  같고

(어찌나 색색의 조화를 잘 맞췄는지) 

 

지 엄마는 귀찮아서 맨날 똑같은 접시에 대충 반찬 꺼내어 먹는데

디자인에 특히 관심이 많은 울 딸아..

그릇장을 뒤져서는 색색이 이쁜 접시는 모두 꺼내어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란 반찬은 모두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식탁이 온통 그득 차 있다.

언제 이런 반찬도 있었나..냉장고 저 구석에 밀어넣고 나도 잊었던 밑반찬들이

모처럼 냉장고 밖으로 나와 내 게으름을 향해 일갈을 던지고 있다.

 

같이 먹자고 딸애를 잡아 끄니

자신은 이미 요리 하면서 밥 한그릇 뚝딱 했다나..

수저를 드는 남편의 손이 떨린다.

속으로 뭔가를 삼키는 파장이 실을 타고 오듯 전해져 온다.

 

밥 숟가락이 내 목에서 걸리더니 자꾸 울대가 아프다.

고등학교 1학년 그 때, 난 뭘했나..

우리들 밥상을 봐놓고는 벌써 밭머리에서 일에 빠져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꽃 한송이 가슴에 푹 찔러 넣어 주고 달음박질 치듯 학교로 내빼던 나.

 

그런 날 저녁이면 집에 오자 마자 귀아프도록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쓸데없이 왜 쌩돈을 쓰느냐고..

벽에 걸린 사진틀 한쪽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생화 송이들,

그걸 하이타이에 싹싹 빨아서 다시 걸면 되는 걸

왜 어려운 살림살이에 한푼이라도 절약할 생각을 않느냐고..

(그래서였나, 난 기를 쓰고 어버이날이 지나면 조화 꽃을 버리려 애썼고

엄마는 그런 나를 나무라며 버려진 꽃을 다시 찾아 액자틀 뒤에 숨겼었다)

 

참 그런 엄마가 야속하고 미웠었다.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촌스럽게 다시 꽂는 꽃이 어딨냐고.

차라리 어깨 한 번 주물러 드리거나

나도 울 딸애처럼 밥은 못 해드려도 새벽밥 하시는 엄마를 도와

아궁이 불이라도 때 드렸다면 아이구, 이쁜 내새끼 하셨을라나..

 

아들 녀석은 A4 용지에 종이접기로 접은 카네이션을 떡 붙여서

- 아빠, 엄마 사랑해요. 어버이날 축하드려요 - 식탁에 카드를 소리나게 탁 놓고 간다.

밥 먹다 말고 우리 부부는 배를 잡고 웃었다.

(둘이서 이불속에서 예상했던 행동이 딱 맞아떨어졌기에)

 

미리 일러주기도 전에

- 엄마, 그 카네이션 꽃 말인데, 시들면 그만인데 살 필요 없제..?

하면서 용돈에서 조금도 손해보는 짓은 안할 것 같더니 역시나! 이기에 말이다.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내내  두 마음이 들쑥날쑥한다.

이렇게 행복한 나와

요즘 힘들다는 핑계 아닌 변명을 세우며

어버이날이건만 오늘도 전화 한통의 입발림으로 내 의무를 저버린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