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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하여


BY 최지인 2006-04-21

출근길.

부산진 세무서 앞을 매일 지나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에 들어오는 광경들이 있다.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한 수정재래시장이

장날을 제외한 날에는 천막을 이불삼아 

느긋하게 늦잠을 즐기는 모습이나,

 

바로 옆 수정초등학교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풍선처럼 환하게 웃으며

조잘대며 아침 등교를 하는 모습하며,

 

가로수 밑으로 먼지와 꽃비를 함께 뒤집어 쓰고

세수 안한 늙은이처럼 꼬부리고 있는 승용차들,

 

이른 아침부터 몇 줌 양지를 찾아

하루바라기를 하러 나선 정류장 한쪽의 노인분들에,

 

그 사이를 비집고 여유만만 생을 만끽하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 사람들..

 

사람이 눈을 가진 이상

내가 보고 싶다고 보고

보기 싫다고 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세상사 이치인지라..

 

가끔은 전날 밤 골목에 널부러진 어느 갈지자 걸음들의

역겨운 흔적들로 하여 기분이 몹시 상할 때도 있지만

또 어느 날인가는

병아리표 천사같은 동심을 자꾸 뒤돌아보다

평시보다 사무실 도착시간이 늦어지는 때도 있고

그 때문에 하루내내 입가에 벙싯거리는 미소를 단 일과가

어려운 일임에도 술술 잘 풀리는 때가 있다

 

오늘은 모처럼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는

오래도록 잊지못할 찡한 광경을 만났다

 

87번 버스.

정류장 앞에 마악 멈춰선 버스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왠일일까.

버스 앞문으로 거동이 심하게 불편한  노인네가

아주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떼고 있고

운전기사 분이 옆에서 거의 안다시피 부축을 해드리고 있다

 

한 걸음 옮기는데 몇 십초가 소요되다시피 하는 걸 보니

몸이 불편해도 많이 불편하신 분인가 보다

그럼에도 기사분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정중하게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게 도와드리고 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이 숨소리조차 죽이고 눈길로 힘찬

응원을 보내는 듯한 표정이었다면 나 혼자만의 마음이었을까

'감동'이란 낱말은 이럴 때 써야하는 것이리

무사히 노인분을 내려드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는 기사님에게

절로 감사의 눈길이 오래 따라다닌다

아! 그 분도 노인이셨다...젊은 오빠라고 불리울!

 

똑같은 연륜을 살아도

누구는 건강하게 마지막까지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누구는 늘 가늘고도 엷은 생명줄을 잡고 한평생 병으로 씨름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세상은

좀 더 가진 사람이, 좀 더 건강한 사람이, 좀 더 많이 배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게끔 만들어진건 아닌지..

 

하지만 생각처럼 행해지지 않는 모순을 걸어가는 현대인들..

그 기사분의 자리에 나를 앉혀 본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바쁜 아침, 그것도 출근 시간대에 왕짜증이 먼저 얼굴을 찌그려 놓진 않았을까

아마도 속으로 온갖 불평을 퍼부우며 내팽개치듯 노인을 내려놓았지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지상정'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어쩌면 그 허명같은 명분을 지줏대삼아

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덩게덩게 덮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치부일런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인지상정'이야말로 우리시대에 가장 갖기 힘든 미덕이요, 힘이라는 것을.

하여, 함부로 내가 입에 담을 말은 아니라는 걸

 

오늘 아침에 본 '아름다움의 실체', 그것에 비견할 수 있는 것이어야

비로소 인지상정이란 낱말은 제 자리를 찾아 빛을 발하는 것이지 싶다

 

내 반경의 모든 것들이

오늘은 새로운 의미를 밝히고 서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