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까지만 해도 맑게 개인 하늘에
햇살이 쨍 하더니 오후로 접어들면서
살살 아픈배 문지르듯이 안개가 스멀거린다.
하던 일 멈추고 우두커니 창을 붙안고 밖을 내다본다.
크기와 높낮이를 달리하는 건물들이
제각각의 표정으로 오후를 걸어가고 있다.
지금 마악 준공식을 맞이할 듯한 잘생긴 고층 빌딩 뒤로
건물 전체가 어둑하게 그늘이 진 낮은 건물이
화장실에서 급한 볼일을 마치고도
화장지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 마냥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오후의 나른함이 더해져서일까
마음결 따라 바라보이는 풍경도 비슷한 색깔이 정해지나보다
이럴땐 농도를 엷게 한 커피 한 잔이 제격이지 싶어
마악 등을 돌리려는데
안개사이 엷은 햇살을 물고
4층 건물 옥상과 옥상 사이를 휙~가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순간적으로 시야에 뛰어든다.
느리게 시선을 옮겨 놓던 마음이
나도모르게 팽팽한 줄을 당긴다.
마치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마냥 풀어지는 내 심사를 향해 "이 양반아, 정신 좀 차려라"
라고 시위를 겨냥한 듯이 말이다.
번쩍 눈에 힘이 들어간다.
흐느적대던 허리가 꼿꼿해진다.
새삼 나를 흔드는 생활의 느낌표 하나.
' 내 마음의 표정에 따라 보여지는 사물의 표정이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사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은
결코 선각자들이나 책속의 글귀만은 아니다'라는 것.
오늘 내가 고양이 한 마리의 등에 실린 햇살의 이동을 보며
찰나에 행해지는 시간의 이동을 깨닫듯이
해이해지는 정신을 조이고 기름을 치게 하는 대상은
이 세상 모든 미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웰빙'이란 기조 속에는 '느림의 미학'이 특히 강조된다.
어쩌면 시대나 남을 따라잡기 '힘들다'
또는 '현실에서의 체념이나 포기'를 나는 나름대로의
그럴 듯한 포장으로 교묘히 숨기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은근히 옆에서 찔러주는 것들에게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건네 본다.
식은 커피 한 잔마저 왠지 소중하다..
아, 이젠 퇴근할 시간이구나.
얼른 집에 가서 매일 대충대충 식탁을 챙겨주던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은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 주어야지.
그래, 아들 녀석이 감자전을 먹고 싶다고 했었지.
오늘 부식가게 아줌마가 놀라시겠다.
웬 감자를 그리 많이 사냐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