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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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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눈빛


BY 최지인 2005-11-17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최대의 행사 APEC.

전례가 없는 비용이 하룻밤의 가을을 수놓고

일상에 찌들어 있던 사람들은 비평에 앞서

그 불꽃에 자신들의 소망과 한숨을 날려보내느라 아우성인 시간.

 

다음날이 남편의 생일이라는 이유로

그 대열에서 본의?아니게 이탈한 나는

모두가 바다로 향해 떠나간 한적한 도시의 버스안에서

또 다른 자연의 불빛을 선사하는 낙화를 내다보며

겨울의 초입을 미리 실감한다.

 

거리를 지나가는 버스 안은

똑 같은 시간대이건만 쓸쓸하리만치 한적하다.

몇 안되는 승객들도 나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환상의 잔치에서 등을 돌린 사연을 꽁꽁여민 채

밖을 향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늘 복잡한 퇴근 길에 하루의 짜증이 더해지던

번잡함을 떠난 한산함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안보는 척 고개를 슥 돌려

몇 안되는 사람의 표정을 훔쳐 보며 혼자서 짐작해보는

그들의 저간에 나름대로의 덧칠을 해가며

어느정도는 그 순간의 몰입에 즐기듯 빠져본다.

 

하지만 그 줄타기의  몰입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버스가 오거리 신호등에 멈춰섰을 때쯤

눈 안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아무래도 그냥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두둑이 옷을 입고도

차안에서조차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는 상황에

밖에선 얇은 춘추 정복에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이란.

 

세계 각지 정상들의 방한에

유례없는 방비와 경비 업무가 하달되었을 테고

지금껏 근무했던 기간중 가장 혹독한 시간을 맞고 있기도 하겠지만..

 

저녁 시간대여서일까.

아마도 순서(계급)별로  급식(배식)이 이루어졌으리라.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 배식줄에서 이탈될 만한 사유가 있었는지

나중에 온 전경에게 가해지는 인격 모독의 광경이란..

 

모든 걸 단시간 내에 해결하고 제 위치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으로 간소화시킨 식단임에도

그 한 그릇을 위한 본능은 배고픔앞에선 자존심 따윈 잊어야 하는  것일 테고..

큰 대접같은 그릇에 길게 뜸을 들여가며

한 번 퍼 주고 뚜껑 닫았다가 다시 한 참 뒤에 한 번 더 퍼 주는 배식.

국밥같은 종류였지 싶다. 밤이라 내용물 확인은 육안으론 어려웠지만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쳐들고 필요이상으로 오래 있게 하던 배식관.

 

한 국자 받은 손이 허공에서 오래 허연 김을 피워 올리고

그 광경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눈은 나만은 아니었는지

버스 뒤편에 앉았던 어느 중년 여인네가

"쯧쯧..먹는 걸 갖고 사람을.." 하며 혀를 찬다.

 

그 소리를 기점으로 모두의 눈빛이 그 쪽으로 쏠린다.

신호는 왜 그리 더디게 바뀌는지.

보여지지 말아야 할 부분일텐데 고스란히 치부를 들킨 모습은

아릿한 가을의 여음으로 남아 모두를 오래도록 실색하게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많이 개선되고 변모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가까이서 목격하게 되는 군경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이제 겨유 중학 입학을 목전에 둔 아들아이의 먼 미래를

미리 걱정하게 하니 나도 참 어지간히 어려운 사람인가 보다.

 

아무리 힘들다 못살겠다 아둥바둥거리고

애면글면 긴장의 시간을 닦달하다가도

하루를 접는 저녁에 서면

다소 풀어진 시선일지언정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모든 것과 겸손한 화해를 나누지 않던가.

 

허나,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싶은 그 허용된 저녁의 눈빛은

아직까진 이 세상을 골고루 싣고 가는 건 아닌가 보다.

 

마음이 아려서였을까.

버스에서 내리자 나만이 알고 있는 저녁의 눈빛이

서늘한 표정으로 나를 맞는다.

 

그 전경이 혹여 마음까진 다치진 않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