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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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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BY 최지인 2005-07-25

 

 이런 저런 현실을 핑계로 미루었던 가족 나들이를 다녀오던 날.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가자는 남편의 말을 맘으로만 고맙게 먹겠다 하고 입이 삐죽 나오는 아이들을 다독여 집으로 들어왔다. 맘 같아서야 주부인 내가 가장 반갑게 받아들여야 할 의견이지만 요즘처럼 힘든 시기엔 밥 한끼 값도 절약해야 할 형편이 아닌가.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에게 우유 한 컵씩을 안겨 놓고 얼른 밥을 하려고 수돗물을 트니 아뿔싸! 아파트 정화조 청소로 단수가 된다던 사실이 그제야 생각났다.
 며칠 전부터 게시판에 안내문이 나 붙고 방송으로도 꽤 여러 번 주지를 했건만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한다는 설렘이 앞서 잊고 말았으니. 이래저래 엄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민망스러운 건 둘째치고 당장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일상 생활에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 지를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음식을 밖에서 시켜 먹게된 아이들은 부지런히 입으로 젓가락을 나르며 오히려 단수를 은근히 즐기는 표정이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버린 나는 자신에 대한 질책을 음식과 함께 씹어 삼켰다. 식구들에게 사온 생수를 건네며 문득 어렸을 적 앞 마당가에 있던 펌프 물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에 앞서 목숨처럼 필수적으로 꼭 준비되어 있어야 했던 마중 물과 함께.
 

 아담한 산골 마을. 병풍처럼 산을 두른 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조금 외진 길 갓집이 우리 집이었다. 길가에 위치하다 보니 마당 가 평상은 늘 지나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길과 접한 마당에는 둘레에 네모난 시멘트를 호위병처럼 두른 진 초록색 펌프가 서 있었다. 여름이면 시원한 감나무 그늘 밑에서 몇 번인가 놀린 팔에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이 목을 축여 주었고 겨울이면 한낮의 뜨락에 내려앉던 햇살처럼 따스한 물이 온천수처럼 솟아올랐다.

 특히 매일 같이 출근하는 우체부 아저씨는 늘 물 한 대접을 들이켠 후엔 엄지손가락을 힘주어 추켜세워 캬, 이 댁 물맛이 최고! 라고 후렴을 달곤 하셔서 지켜보던 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원한 펌프 물을 맛보려면 그냥 되는 게 아니었다. 그 펌프 물을 길어 올리기 위해선 마중 물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늘 펌프 옆에는 여분의 물이 담긴 물독이 바가지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바가지로 몇 번의 물을 펌프 속으로 옮겨 넣으면서 재빨리 펌프질을 해 물을 끌어 올려야 했다. 그것도 요령이 있어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물만 자꾸 집어넣고 헛손질을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펌프는 결코 단 한번에 물을 허락하진 않았다. 마치 이 사람이 과연 물을 마실 자격이 있는가 시험하는 것처럼. 부모님은 마중 물 한 바가지에 정확히 두 번이면 물을 끌어 올렸는데 서너 바가지에 대 여섯 번은 헛손질을 해야만 물을 끌어올리는 나는 늘 보면서도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물질 사이에도 서로가 인정하는 일치된 호흡의 교감이 있다는 걸 알 턱이 없는 어린 나로서는 넘기 힘든 산처럼 늘 숙제로 남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공기처럼 늘 있는 듯 없는 듯 제 자리에 있어 그 존재의 소중함을 지나쳤던 마중 물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여름이 있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불볕 더위에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려 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온 들녘의 식물들은 성장을 멈추고 풀석이는 먼지처럼 삭아 내렸다. 사상 유례 없는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던 그 해.
 

 혼자서 집을 보던 어느 날, 신작로에 긴 먼지 꼬리를 달고 자동차 한 대가 달려오더니 우리 집 앞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도회에서 온 듯한 낯선 이는 지나가다가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시러 들어왔단다. 그는 마당가 펌프가 신기한 듯 들여다보더니 물을 길어 올리려는 나를 밀치고 자신이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자꾸 헛손질만 하고 마중 물만 축내던 그 사람이 우스꽝스러워서 처음엔 재미있게 보다가 자꾸만 퍼부어 넣는 마중 물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속으로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만 두라는 소리를 못한 걸 보면 도회지 사람에 대한 순진한 산골 소녀 특유의 움츠러듦과 반면 도회 사람보다 내가 더 나은 게 있다는 어떤 뿌듯한 자부심이 함께 공존했었지 싶다.
  그 날 마중 물이 없어 물을 길어 올리지 못한 나는 당연히 저녁을 지어 놓지 못했고 그런 나에게 밤늦게 들어오신 어머니는 고된 삶의 한까지 더해 지독한 원망의 매를 들었다. 물 두어 바가지가 그렇게 소중할 줄이야!

 마중 물을 지키지 못한 죄로 어머니께 '지 눈 번히 뜨고 목숨 내 놓는 못난 것'이라며 또 얼마나 꾸중을 들었던가. 눈물 똑똑 떨구고 선 나에게 어머니는 눈물 모아서 밥할 거냐며 양동이를 쥐어 내쫓았다.

 이미 캄캄한 밤에 달과 별을 의지 삼아 집과 꽤 동떨어진 샘터로 가, 한참이나 있어야 손바닥 하나정도 들어차는 물을 모아 양동이에 채우면서, 무서움보다는 스스로가 참 바보 같고 속상해서 많이도 울었다.
 그 일이 기회가 되어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자기 밥그릇을 제대로 챙기려면 늘 여분의 준비된 물이 있어야 한다고 삶을 빗댄 마음가짐의 필요성을 아버지로부터 또 한 번 들었음은 물론이다.

장황한 훈계를 들으면서 내 잘못에 대한 반성도 반성이려니와 꿇어앉은 발이 저려와 밥그릇에 눈물을 똑똑 떨구다 그 눈물이면 밥 한 줌은 앉힐 수 있었겠다고 어머니께 또 머리를 쥐어박혔다.
 

 마중 물. 사전적 풀이를 보면 마중-물「명」: 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아니할 때 물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미리 받아 두었던 물로 위에서 붓는 물이라 표기되어 있다. 또한 마중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오는 사람이 이르기 전에 나아가 맞는 일이라 기록되어 있다. 한 방울의 신선한 새 물을 얻기 위해서도 이렇듯 미리 여분의 물을 마련해 놓는 정갈한 마음가짐이 필수적인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말일 테다.
 

 사람 사이에도 서로를 익히기 전에는 마중 물 같은 얼마간의 침묵 같은 공간적 거리가 필요하다. 조심스런 배려와 노력, 그리고 관심과 인정이 스며들 듯 자리하면 그 때부터는 펌프 물처럼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의 관계가 정립되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달마중, 꽃 마중, 별 마중, 밤 마중, 님 마중 등등...참으로 예쁘게 다가오는 많은 단어도 마중 물을 길을 때의 그 소박한 아름다움의 영역에 기인하는 범주가 아닐까 주장하고 싶다.
 

 준비되지 않은 일 처리는 언제나 불협화음을 불러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수많은 병폐 현상과 극단적이고도 팽배한 이기주의를 바라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마중 물의 미덕이 안타까운 심정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요긴한 사회 구성원이 될 지는 모르지만 가족들에게, 더 나아가서는 이웃과 사회에 마중 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 본다.

 

                          -----2005 부산 여성지 원고 모집 수필부문 최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