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포도서리
요즘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릴 적 난 오빠의 '밥'이었다.
학교 갈 땐 억지로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해서 연약한 내 등 위에
가방을 포개어 얹는가 하면 개미를 잡아서 옷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일부러 산 묏등가에 나 있는 뱀구멍을 막대기로 찔러서
겁 많은 내가 지레 겁먹고 혼비백산하는 모습을 즐기는 악동이 바로 오빠였다.
엄마가 시장이라도 갔다 오실라치면 똑같이 나누어 준 과자가
엄마가 등돌리기 무섭게 어느새 오빠의 손아귀에 다 들어가고
눈에 물기 가득한 동생들과 나는 손가락만 졸졸 빨아야했다.
만일 반항이라도 했다간 오빠 특유의 고문(?)에 가까운 꿈틀거리는 벌레를 잡아
머리 정수리에 얹어놓는 행동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벌레라면 그 모양새나 크기에 관계없이
거의 기절 수준에 이를 정도로 무서워해서 오빠에게 공인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
점심을 드시고 일을 나가시는 부모님께서 오빠에게는 소꼴을 한 리어카 베어 놓을 것과
나에게는 저녁에 쪄먹을 감자를 한 양푼 깎아 놓을 것을 각각 명령하셨다.
하지만 이 날도 오빠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또 꿈틀거리는 벌레를 잡아 든 오빠는 나에게 다가와서
벌레를 머리 꼭대기 위에 떨어뜨릴랑 말랑 하면서 협박조로 말했다.
"야, 니한테 내 제안 하나 하겠다. 순남이네 포도밭에 가서 포도 좀 따와라.
그러면 내가 이 벌레 치우고 안 그러면 니 알제? 확! 말 안들었다간
내 몫인 마당쓸기 당번 한 달 동안 니 몫이다 알겠나? … 자,셋까지 센다 엉?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 반…".
"아악~~ 오빠야 살려줘 제발! 내 가서 포도 얻어 올게 응?"
나는 거의 사색이 되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사정했다.
하지만 오빠는 야속하게도 나의 애원을 냉정하게 딱 잘라버렸다.
"아~ 아니, 다 시들어서 맛없는 거 얻어 오지 말고
니가 직접 싱싱한 걸로 따와야 봐준다 알겠나?"
"잉잉~~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라구. 나 겁난단 말이야.
제발~응? 한 번만 봐줘 제발.."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에게 더 불리해지고 그만큼 무서워지는 오빠임을 알기에
눈물을 똑똑 떨구며 한밤중도 아닌 대낮의 포도 서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나.
포도밭의 입구에 다가갈수록 두려움으로 방망이질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저만치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오빠의 눈길이 더 무서워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며칠 전에 엄마가 큰 맘먹고 사주셨던 파란색 새 원피스 앞자락을
보자기처럼 동그랗게 여며 손길 닿는대로 아무렇게나 후다닥 포도를 따 넣었다.
이젠 됐다 싶어 일어서려는데 저만치 뭐라고 손짓을 하는
주인집 아저씨의 머리가 보이는 순간 정신이 아찔하면서
다리가 후들거려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아, 어쩌나 …
밤이라면 얼굴이라도 몰라보겠지만 훤한 대낮이 아니던가.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려 마구 기기 시작하였다.
얼마를 기어서 도망쳤을까.
고개를 휘둘러보니 어느새 산등성이를 넘어 공동묘지까지 와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 와중에도 꼭 그러쥔 치마에 두 송이 남은 포도가 으깨어진 채 남아 있었고
온통 포도물과 흙물, 풀물에 얼룩지고 찢어진 치마가
내 마음에 진 얼룩만큼이나 일그러진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공동묘지의 으스스한 분위기보다도,
이리저리 긁혀 생채기가 난 팔 다리의 아픔보다도,
날 이렇게 만든 오빠에 대한 미움보다도,
다시는 학교에 못 입고 가게 된 원피스에 대한 미련이
긴장과 함께 삼켰던 울음을 두 다리 뻗고 서럽게 울게 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주인 아저씨는
처음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꾸벅거리고 인사를 하는
우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은근히 대견해하기까지 하셨었기에
그 실망감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오빠와 나의 행동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계셨으면서도 반신반의 했었다고.
다 익지도 않은 포도를 정신없이 따는 내가 가여워 보여서
불러서 포도를 주려고 하셨는데 도망가더라며 저녁에 한 소쿠리 가득
포도를 담아오셔서 부모님께 하신 말씀이셨다.
"이느머 자슥, 내 니한테 그리 갈차주드너. 어데 동상한테 시킬 기 없어서 그런 걸 시키너.
니가 정신이 똑바로 백힌 놈이너. 동상이 니 장난감이너 어이?"
멍석 위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던 아버지의 노한 음성에
마당 한쪽 별빛처럼 밤을 유영하던 반딧불이가
혼비백산한 듯 길가 논배미쪽으로 화르르 도망쳤다.
여름날 아버지의 지친 하루끝은 그렇게
남 앞에서 자식을 혼내야 하는 치욕으로 마감되었다.
동생은 나 몰라라 혼자서 냅다 도망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오빠는
온 식구 앞에서 아버지께 지게 작대기로 죽도록 맞았다.
항상 동생들을 괴롭히는 오빠가 한 번만이라도 혼나는 모습을 그렇게나 소원했었던 나였다.
하지만 막상 내 눈앞에서 혼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후련하기는커녕
벌받은 화풀이가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올까 조마조마한 가슴이 더 졸아들어
결국은 울면서 아버지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아부지, 아부지. 지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신 안그럴게요. 야?
지가 죽어도 못한다 했으면 됐을텐데 저 때문이예요. 제발 오빠 좀 그만 때리세요."
자식을 때리면서 차마 속으로만 삼키던 아버지의 아픈 눈물이
나의 애원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다는 듯 물꼬처럼 터졌다.
마당 한가운데로 지게 작대기를 내동댕이치며 자신의 가슴을 치시던 아버지는
모든 게 다 못난 부모 만난 탓이라고 자책을 하셨다.
그렇게 내 생애 단 한 번의 서리는
부모님의 가슴에 숯덩이를 하나 더 달아놓고 훌쩍 세월의 강을 건너와 버렸다.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난 여름날의 가슴 저린 추억이다.
이젠 다들 가정을 꾸리느라 바쁜 형제들이 고향집에 모이면
제일 큰소리를 치는 건 오빠가 아니라 바로 나다.
그때 오빠의 만행(?)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성토를 할라치면
자란 올케들은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간다.
그러나 나는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리다.
어릴 적 그 기고만장했던 우리 오빠의 모습이
이젠 세월의 등짝에 밀려 하얗게 탈색되어짐이 안타까워서이다.
내가 일부러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뻔뻔하리만치 항상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던 오빠의 모습을
잠시만이라도 떠올리기 위함이란 걸 오빠는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