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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의 여행


BY 최지인 2005-04-11

봄의로의 여행


 며칠 뒤면 춘분이다. 굳이 절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서서히 선명한 색채를 띄기 시작하는 주변의 풍경과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부산한 소리로 봄의 흔적들은 쉽게 발견된다. 그렇듯 자연의 섭리는 한치 오차도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리관물(以理觀物)이라 했던가. 모든 세상 만물 속에는 삶의 이치가 들어 있어, 우리는 정직한 삶의 시선에서 자주 비껴나 있다가도 자신만의 자리로 되돌아 올 수 있는 것이리라. 그것은 자연만이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고유의 자정작용이며 역할이 아닐까 싶다.
 

 하늘의 푸른 정기를 흠뻑 마시고 동면에 들었던 땅이 그 푸른빛을 서서히 빗물에 풀어낸다. 연한 연둣빛 움트는 계절은 긴 기다림의 시간을 이겨낸 나무들의 가지에도 먼 뿌리에서부터 끌어올린 수액으로 잎을 틔우기 시작한다.
 

 겨울 산을 녹인 바람이 훈기를 몰아 목련나무로 내달리고 봄을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안으로 속살을 찌워가던 봉오리는 그리 오래지 않아 눈부신 순백의 꽃을 피워 내리라.
 아직은 군데군데 얼음이 남아있는 시골의 시냇물 밑으로 겨울을 씩씩하게 견디어낸 작은 물고기 떼가 줄지어 노닐고 그 물줄기를 끼고 드문드문 보드라운 버들강아지의 수줍은 나들이가 작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금씩 빛의 강도를 높여 가는 빛살에 마음의 갈피마다 끼어 있는 살얼음을 녹이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점점이 물들어 가는 분홍빛 설레임이 찾아든다.
 

 봄의 흔적은 소리에서도 온다. 포근한 눈 이불을 털어 내며 한껏 기지개를 켜는 들판의 보리이삭에서는 푸른 소리가 난다. 두텁게 얼어있던 호수의 얼음이 녹으면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하모니, 그 자체로 다가온다. 팽팽한 빨랫줄에 널린 눈부시도록 하얗게 펄럭이는 이불홑청은 상큼하고 개운한 바람소리를 닮았다. 쑥이며 냉이 등 봄나물을 캐느라 분주한 아낙네들의 푸짐하게 오가는 정담은 인정의 소리이다. 땅심을 돋우기 위해 불을 놓은 논둑이 타들어 가면서 검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묵묵한 땅의 소리이다. 그런가 하면 새학기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하늘 닮은 눈부신 함성은 순수의 표출이다.
 

 이렇듯 계절의 진리는 아주 평범한 일상에 있다.
 봄은 제 집 울타리의 개나리에서 먼저 피어나고 자신을 중심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가장 귀중한 것은 언제나 자기 주위 아주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박한 사실을 우리는 또한 자주 잊고 산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들의 마음의 소리일 것이다. 농부가 자신의 농토를 불태우며 한 해 농사를 짓기 위한 용기의 다짐으로 뜨거운 내면의 마음 밭을 가꾸듯 우리들은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는 미련함보다는 묵은 것은 과감히 떨쳐 내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소리들로 가득 채우는, 일련의 자성의 목소리를 키워야 할 것이다.
 

 '마음의 소리에 불을 피워 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농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믿음 또한 한해의 봄을 시작하면서 가슴에 새겨봄직한 일이다.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소리에 대한 믿음이 당당할 때 삶의 기쁨과 희망과 희열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 봄이 진정 희망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봄은 과연 어디쯤 와 있고 얼마만큼의 부피로 쌓여 있는 걸까.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가치 기준을 매겨서 자신의 이익을 따지고 계산하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오늘의 우리들이다. 메마른 시대의 명분을 내세워 변명으로 삼기에는 스스로의 팍팍함에 가슴이 저려오는 요즘이다.
 

다가온 봄날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진정 소중함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사연들을 아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두고두고 되새겨보면서 행복한 웃음 지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