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야 할 정거장을
단지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이유로
두 정거장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김종찬의 '산다는 것은'--
그렇더군요
좋아한다는, 아무 계산없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
평소에는 없던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과 여유를 가져다 주더군요..
그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에 또 다른 새로운 빛을 발휘하기도 하더군요
제가 지나치는 그 순간에 들었던
내 귀의 즐거움과 마음의 촉촉함 말고도
더 소중한 마음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건 제 삶에 있어 몇 안되는
또 다른 깨달음의 수첩에 기록될 풍경이었습니다
나오던 노래가 잠시 멈추고
버스의 문이 열렸던 개금동의 어느 정류장.
초로의 할아버지 한분이 힘겹게 오르셨고
어느 누군가가 의자를 얼른 내 드렸더랬습니다
의자에 앉으시려던 할아버지가 잠시
중심을 잃고 주춤거리다 지갑을 떨어뜨리셨고
지갑 안의 얼마 안되는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졌겠지요
얼른 내용물을 서 넛이 달려들어 수습해 드렸는데
다들 그런가 보다 했지 뭔가 이상하다는 감은 못잡았더랬지요
차가 달리면 음악이 조금은 불안정하게 흔들리는데
이상하게 음질이 고르다 싶더군요
아!
운전 기사분은 일의 마무리가 되고
할아버지가 자리에 무사히 안착하실 때까지의
한 2분여를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사분의 뒷모습을
멍하니 ...참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한동안 쳐다 보았었습니다
창밖에는 마침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다들 가로변에 우르르 몰려 다니는
몇 안되는 바싹 마른 잎과 앙상한 가로수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지만
표정들은 따뜻함으로 충만한 눈빛 이었고
서로의 교감은 소리없는 미소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겨울이 겨울 다울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풍경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놓고 들었던 그 노래- 산다는 것은-의 의미,
바로 기다림의 미학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그 운전기사님의 따뜻하지만 줏대 꼿꼿한 의식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