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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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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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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에 다녀와서


BY 최지인 2005-04-02

아이의 졸업식.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졸업식장 광경이 왠지 낯설고 씁쓸한 심정이다.
조금은 경건하고 엄숙해야할 식장 분위기가 숫제 축제 분위기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을 거쳐야 할 졸업이라는 정거장,
학업성취의 첫 점검이자 결과의 매듭이기도 한 초등학교 졸업식.

몸은 예전에 비해 훨씬 성숙된 모습들이건만
마음은 오히려 더 퇴보한 듯한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로서의 자질을 탓하기엔 시대가 미친 힘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꽃다발을 몇개씩이나 받아 한아름 벅차게 안고 있는 딸애를 보며
문득, 유년의 자그마한 여자애와 초라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난해도 마음은 평화롭고 부자였던 학생시절이었는데
졸업식날 그 놈의 꽃 때문에 여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어머니께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죄를 지었던 기억.

다른 애들은 다들 아침 일찍부터 부모님이 졸업식장에 오셔서
학교 정문 앞에서 파는 생화 꽃다발을 사 주시는데
학교에서 큰 상에 장학금까지 받는 딸이건만
우리 엄만 식이 다 끝나갈 무렵에야 헐레벌떡 뛰어 오셨다
하나 밖에 없던 낡은 오바 차림에 오빠 공부방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던
먼지 앉은 조화 꽃다발을 하이타이에 싹싹 빨아서...

필요 이상으로 황망해 하고 수줍어 하는 엄마를 둘러싸고
학교 선생님들이 뭐라고 뭐라고 하시건 말건 우아까진 못가도
예쁘게 잘 차려입고 이쁜 생화 꽃다발을 기대했던 딸은
마음 속에 쨍하고 금을 긋고 말았던가.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동생들이 불러주는 송가 졸업식 노래를 들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서럽게 울었던 것은...

식이 끝나고 엄마가 뒤에서 애타게 불렀지만
뒤 한번 안돌아 보고 쌩하니 집으로 내달려 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얼마나 울었을까...
애써 화를 삭히고 나직하게 내뱉던 엄마의 목소리
"미안하다. 시들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그 꽃 살 돈이면
내새끼 좋아하는 짜장면 하나는 배터지게 사먹일 수 있겠다 싶더라"

순간 가슴으로 뻐근한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못난 딸애는
끝끝내 '잘못했다'는 말대신 잠든 척 몸만 안으로 더 구부렸다.

그 딸애가 커서 낳은 꼭 그짝은 아니어도
엄마보단 친구가 더 좋은 딸애의 졸업식장을 돌아나오며
졸업식이 끝나기 바쁘게 엄마에게 돈을 뜯어내 친구와 바람처럼
사라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아직까지 엄마한테 잘못했다는 말을 못했다는 사실을...

지금, 나의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야겠다.
우리엄마, 그 사실을 기억이나 하실까?
아니 어쩜 세월의 더께를 더해 가슴에 커다란 멍울로 얹혀 있을지도...
그때 이불 속에서 참았던 눈물을 오늘 바가지로 풀어낸들
"그래, 내 새끼..."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있는 오늘은 행복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