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다 보니
아이들 밥 챙겨주는 일,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요
내 새끼들 거둬 먹이는 일이 즐거워야 할텐데
가끔은 귀찮을 때가 있더라구요..
오늘도 딸애가 먹을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툴툴대길래
"아고, 이것아 배고파 봐라. 김치만으로도 꿀맛이지"
퉁박을 주다 말고 갑자기 휙 스치는 생각~~
"아, 우리 옛날식 김치 도시락 밥 해먹을까? " 하니
"우와~ 맞다 엄마, 그거 도시락 막 흔들어서 비벼먹는 거지? 맛있겠다"
딸애에겐 그 김치 도시락의 맛보다는
엄마의 학창시절
교실 중앙에 있던 난로와 그 위에서 따끈하게 데워져
깔깔거리며 흔들어 먹던 점심시간의 맛있는 추억담을
다시 듣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마 더 크게 작용했겠다 싶지만..
흠,,그런데 마땅한 그릇이 없네..
옛날의 그 누런 색의 네모난 양은 도시락이 딱인데..
찬장을 뒤져서 대신 딱딱 고리를 채우는 동그란 스텐그릇을 찾았지요
먼저 맨 밑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김도 잘게 부수어 넣고
고추장 한 술, 친정 엄마가 직접 짜 주신 들기름 몇 방울 떨구고
그 위에 따뜻한 밥을 깔고
마지막으로 그 위에 계란 후라이 얹고
그 다음엔 뚜껑 꼭 닫고 무지막지하게 흔드는 순서..
뭐가 그리 신나는지..울 딸애 열심히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데요..
맛있다고 열심히 먹어대는 딸애 옆에서
전 더이상 옛날의 추억을 떠벌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딸애야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니 그 신비감이 줄어들었을 테고
전 왠지 그 소중한 기억의 우물이 자꾸만 줄어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다만, 저장된 시간을 다시 퍼 올려
아주 천천히..맛있는 추억을 음미하며 잠시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녹아 있는 밥의 정서는
제가 기억하는 한 삶의 가장 아름다왔던 시절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