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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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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실감


BY 최지인 2005-04-01

급한 볼일이 없는 한 오르는 집 뒤 백양산.
매일 흔하게 눈에 밟히던 청솔모들이
매서워진 날씨 탓인지 눈에 띌 기미가 없다.

 

사람마다 구별되는 발자국 소리가
예민한 들짐승들에겐 세상을 읽어내는 또 다른 방법이었을 터,
분명 내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늘 그 시간이면
소나무 위에서 솔방울을 갉아먹으며
반들반들한 눈으로 나를 반기던 청솔모가
오늘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람쥐를 잡아먹어 밉다고 해도
그래도 내겐 가만가만 마음을 끌어주던 산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그렇듯 언제나 닮아있다.
말없이 스며들 듯 가득 들어와 놓고선
어느 날 홀연히 손댈 수 없는 완강한 침묵으로 떠나가는---

 

그동안 배속이나 그득 채워 놓았는지 염려스럽다.
그리 길지 않을 겨울이 지나
여위었으나 조금은 부드럽고 깊어진,
그런 모습과 해후하고 싶다.

 

실팍한 봄의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