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얼굴
"엄마, 엄마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응, 그건 왜 물어?"
"아니...그냥 한번 물어 봤어"
학교에서 돌아와 고픈 배를 열심히 채우던 아들 녀석이
딴에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물은 말이다.
원, 녀석두..
녀석이 그런 말을 던진 의중을 알 듯도 하다.
요즘 친구들에게 쏙빠져
아침 등교길부터 시작해서 학원 갈 때, 심지어 숙제까지도
4총사가 한덩어리가 되어 붙어 다니기에 말이다.
"록아, 너 이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거구나..그치?"
"응, 맞어 내 친구들도 다들 요즘에는 엄마보다 친구들이 더 좋데"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을 꼭 집어삼켰던 녀석은
가려운 곳을 긁어 준 엄마 말에 속이 시원한 표정으로
잠시의 틈도 주지않고 곧바로 맞장구를 친다.
아! 그런데 이 서운함은 뭔가.
내 성장과정을 돌이켜봐도 분명 엄마보다 친구가 좋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가슴 한켠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듯한 이 허전함..
나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굳어졌나 보다.
아니, 나는 일부러 표나도록 삐친 척 했는지도..
마음 먹기따라 감정도 움직이는가
눈물이 나올 거 같아 얼른 일어서 부엌 싱크대로 가
할 것도 없는 설겆이 통에 손을 넣고 허둥거렸다.
순수한 동심은 어른들의 욕심과는 다른 예민한 촉수가 있는 건지..
아차! 싶었는지 안절부절 당황한 아들 녀석의 시선이 등허리에 느껴졌다.
괜시리 공부방에 들어가
내일 분 학습지를 미리 하지를 않나
아침에 들었던 영어 테잎을 정 자세를 하고 다시 듣지를 않나
그러면서도 빼꼼빼꼼 간간이
엄마의 행동을 관찰하는 눈길에 미안함이 가득차 있다.
부엌 창문 바로 눈높이로 내다 보이는 밖에
어느새 잎새의 틀을 갖춘 은행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잎에 흘려버린 계절을 새삼 뇌이면서 성장을 생각했다.
꽃들의 향연에 홀려 관심 두지 않은 사이에
나무들도 저마다의 푸른 시간을 저장하는데
내 아이라고 그 영역에서 벗어나겠는가.
왜 나는 모든 걸 마음에 가두고 싶어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로 한참을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던가 보다.
살짜기 뒤에서 내 허리를 감고 기대는 아이의 무게가 느껴진다.
"엄마, 엄마 지금 속상하지..내가 한 말 때문에.."
"....."
뭐라고 해야겠는데 이 복잡미묘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겠는지..어물어물하다 투정하듯 뱉어버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정말 서운하구나..
내 아들이 벌써 엄마 품을 떠나고 싶어 하는거 같애서..."
"엄마, 엄마는...무슨..그런 말이 어딨어.
엄마는 원래 항상 정해져 있는 거잖아..내 말은..
내말은..저기...저기..엄마, 미안해요.."
그러곤 금새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궈낸다.
던진 기억에도 없는 돌멩이가 가슴속에서 찰랑찰랑 파문을 일으킨다.
왜 모르겠는가
엄마의 자리는 누구도 근접 못하는 절대적인 자리라는 걸.
그걸 설명해 내기에는 어린 녀석으로선 언어의 한계가 있을 터라는 걸.
그럼에도 성장의 얼굴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처럼 거침없다.
그렇게 녀석은 아이에서 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