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의 나라 ! 동방 예의지국에서 태어난 나는 때를 잘 맞춰서 태어난 탓에
방안에 앉아서도 T.V 와 인터넷이 전해주는 각종 지구상의 뉴스들을 접해서 직접
가보지 않고서도 대~에충은 어떠 하리라 상상하고 짐작하며 26일 아침 비행기에 올랐다 .
출발 당일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 스타일은 약간 구겼지만 우아하고 예의바른 한국인 답게
비행기에 착석하고 이륙 했는데 아~`후 비가온 탓에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
태어나 비행기를 처음 타본탓에 혹시 고소 공포증이나 멀미를 걱정했는데 ,,,, 솜사탕인듯
빙하인듯 구름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멀미조차 느끼지 못했다 .
2시간 20분만에 절강성내에 위치한 항저우 공항에 도착해 황산으로 이동해서 청대 옛거리 관광을했다.
청대 옛거리는 1000년전 송나라때 처음 형성돼었는데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건축물로
남아있다는데 1층은 상가이고 2층은 주거공간이었다 .
우리나라 인사동 거리라고 생각하면 될듯 ,,, 더러 어느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듯 허름했다 .
중국은 대륙의 습한 기온탓에 일반 가정집들도 모두 2층이나 3층으로 지어져 있었다 .
1층은 거주하지 않고 모두가 창고등의 용도로 쓰이리라 짐작이된다 .
서울관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아~`후 쭝국술 너무 독하다 . 이덥고 습한 기온에 50도가 넘는
독주라니 쭝국 사람들 대~~단하당~
더 먹다간 낼아침 황산이 말짱 황~~될것같아 일단 튀고보자 ~~~~
둘째날 아침 안휘성 남쪽에 위치한 황산을 오르기위해 자광각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옥병루로
출발했다 . 황산에 올라보지 않고 산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무진장 기대된다 .
" 황산에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않다 " 라는 말이있듯,,,,,황산은
바위와 소나무의 산이었다 . 1990년 세계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록돼있다는 황산은 오절이란
말로 유명하다 .황산 오절이란 바위와 소나무 , 운해 , 동설 , 온천 이란다 .
계절탓에 동설은 없고 온천은 시간 관계상 생략했다 .
우리나라에선 소나무들이 재선충 으로 병들어 있는곳이 많은것에 비해 이곳의 소나무 들은
병들지 않고 푸르고 깨끗한 것이 기암 괴석들과 함께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어 부러웠다 .
1년이면 200일이나 250일은 구름과 안개에 싸여있고 비가 온다는데 우리가 간날은 구름한점 없이
깨끗하고 청명했다 시야는 맑았지만 운해를 못봤다 .
그 많은 소나무중 10그루는 각각의 독립된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이것이 10대 명송이고
그중 5그루는 유네스코에 자연유산 으로 등재되어 있단다 .
영객송 : 옥병봉 동쪽 1680M의 고지에 있는 황산의 대표 소나무로 수령이 800년이란다 .
송객송 : 손님을 배웅하듯 몸을 읍하고 있어 붙인이름
접인송 : 시신봉 동남 쪽에 위치해 있고 "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한다 " 해서 붙인이름
연리송 : 부부의 연과 사랑의 맹세를 닮았다
용조송 : 5개의 뿌리들이 바깥으로 돌출된것이 용의 발톱을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
< 이 다섯 그루는 세계 유네스코 자연 유산임 >
나머지는 탐해송 , 수금송 , 흑호송 , 포단송 , 단결송 이 10그루가 황산의 대표송 이라는데 특이하게
잘 생긴 괴송들도 멋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 넓은 바위틈에 힘들게 자리해 온갖 악천후와
맞서 몇백년을 버티고 있는 이름없는 소나무가 ` 더 멋지다 .
연화봉과 백보운재를 거쳐 천해에 있는 백운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회장님과 신대장님은
오전내내 매우 흐림이다 중국술의 다량섭취로 인해 신대장님은 황산에 오염물질까지 투척하고
계신데 그얼굴빛이 과연 해산어멈이다 ㅋㅋㅋ 넘 불쌍해 웃음도 안나온다 .
식당앞에 두분 나오시기에 " 얼굴빛이 영 안좋으신데요 " 했더니 회장님 갑자기 머리빗질을 하시며
" 관리는 해야지 ~ " 하신다 영희 언니를 포함한 6인조 원더걸즈가 왓~뚜와리로 춤바람 위문 공연을
했더니 중국인들도 웃겨 죽겠단다 .
우리네 설악산은 헬기로 돌을 날라다가 계단을 만들었다는데 황산은 박혀있는 돌을 정으로 쪼아서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고 의자도 , 쓰레기통 까지도 모두가 돌이었다 .
서해 대협곡의 시작점인 보선교는 두개의 절벽에 동굴이 뚫려있고 그사이를 돌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내려다보면 아찔한 협곡이다 . 등소평이 76세이던 1979년에 몸소 배운정에올라 서해
대협곡을 굽어보고 감탄을 하며 이런 경치를 남녀노소 누구나 볼수있게 하자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는데 이 개발은 지금도 계속되고있었다.
보선교에서 배운정까지 깍아지른듯한 바위 절경은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면서도 말로
표현 할수없는 쾌감이 있었다 .
이 구간 부터는 바위 옆으로 구멍을 뚫어 철심을 박아 만들었다는 협곡의 길이다 .
가히 인간 승리의 길이다 .
사람이 그냥 올라기기도 힘이드는 길을 어께로 져다날라 산꼭대기에 호텔을 지었다니
믿어지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
깡 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아저씨가 나무로 만든 작대기를 에께에 메고 앞뒤에 건축자재를 매달고
올라가고 있었다 . 도착해서 내려놓고 저울에 달아 120근이라며 장부에 기록한다 .
각자의 처한 입장이나 생활의 차이를 늘 실감하며 살고 있지만 마음이 착찹했다 .
130억 인구 중국의 고도 성장을 묵묵히 떠 바치는 하층민의 생활실태를 목도하니 가슴이 아프다 .
7시간의 등반내내 수없이 펼쳐지는 웅장한 경치를 짧은 글재주로는 한계가 있으리라
원숭이가 바다를 보는듯한 형상의 "후자관해" 날아와 박힌듯한" 비래석" 등의 절경들을 땀흘리며 쉬임없이
촬영하시느라 재수오빠는 내내 분주하시고 배운정에 도착하자 연인들이 사랑의 맹세로써 남겨놓은
자물쇠가 헤아릴수 없이 많이 걸려있다 . 배운루를 지나 2박을 하기로한 서해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오늘의 고단하고 행복한 일정이 마감됐다 .
여행 3일째,,, 단화봉에서 일출을 보고 단결송과 사자봉 청량대 를거쳐 붓끝에 꽃이핀모습 이란뜻의
"몽필생화" 를 감상하고 "필화봉" 과 "시신봉"을 거쳐"송객송"의 배웅을 받으며 백아령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운곡사로 하산했다 .
시내 호텔에서 3박을하고 여행 4일째 ,,,, 서동파가 만들었다는 서호를 배로 유람관광을 하고 4시
비행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 오는데 감회가 새롭다 .
중국 대륙이 넓긴 넓다 이 먼나라에서 몇달을 걸어와서 조공을 바쳐라 황제께 경의를 표해라 하며
호령하고 군림했다니 그것이 땅덩어리 크고 인구가 많은 대국의 힘일 것이리라 .
제주도도 한번 못가보고 끝나는줄 알았더니 대륙을 다 가보다니 하는 생각에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아~~ 황산이여 ~`대륙이여 안녕 다시 올수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