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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비단구두 신고 싶어


BY 우연 2005-01-30

애들 방학도 끝나가는 1월의 막바지에서  마음은 조금씩 겨울의 두께를 벗고있다.
신고있던 부츠가  싫증이 났다. 미리 철을 아는지 발이 한짐같이 느껴져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인터넷몰에서 구두를 두켤레 주문했다. 판매몰의 발송싸인이 떨어지고 난후부터 은근히 기다림의 연속이다. 새신을 기다리는 설레임의 색깔은 분홍에 가깝다.

남편도 사고를 쳤다.
규정속도 지키며 느긋하게 살자고  수차례 꼬셨건만(?) 출퇴근길이 무슨 아우토반이라고 무인단속기에서 해방될것을 꿈꾸며 gps를 신청하고 연일 택배가 왔냐안왔냐를 전화로 묻고있다.

 
토요일 오후에 택배가 오셨(?)다. 각각의 쇼핑몰에서 작은 박스 두개로 배달이 됐는데 신발이다. 살짝 이는 흥분을 누르고 끌러보니 괜찮다.
검정구두는  걱정했던 조잡함이 없이 깨끗해서 만족스럽다. 다른 하나는 세무 구두로 알고 샀는데 천으로 된 일명 비단구두. 내구성이 좀 떨어지겠지만  비오는 날에 만 피하면  별로 문제가 안될 것 같다.  새신발이 주는  가볍고 산뜻함에 홀랑 사로 잡힌다.  퍼플과 검정 매치에  볼라인은 큐빅 장식......어서 날 풀리고  화창한날이 와야할텐데 하며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 그날 오밤중에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 신발 때문에 일어날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잠결에 소방훈련하듯 다급하고도 단호하게 내이름을 외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어야했다.
000~~!!
000~~!!
졸다가  가스렌지에 뭔가를 태웠나하고 스스라치게  놀라 튀어나왔다.
애들도  토끼눈으로 내다본다.
이쯤이면 우리집 비상사태, 뭔일이 났다는 신호다.
워낙 깜박깜박하는일이 잦아 일단 주방쪽을 눈점검하는데 그는 양손에 내 "비단구두"를 들고 잡아 먹을 태세로 노려본다. 정말 안어울리는 풍경이네, 이리 내놔요 하고 뺏는데 노발대발한 이 남자  당장 갖다 버리라고 호통이다. 주부가 이딴걸 신어, 엉?
대체 뭐가 어쨌다는거지? 신발은 신발일 뿐이야 하고 억울해하는 나에게 한층 누구러져서 이번에 반품하라고한다.
신발 매장에 한번 가보라고, 나는 어두운 색이 싫다고, 옷차림이 이렇게 수수한데 신발이라도......이히히
이거 실내용이야, 실내용. 룸싸롱에서 신는거, 주부가 신는거 아니야.
룸싸롱 아가씨들이 그거 신었대? 봤어?
아예  구두를 박스에 넣고서야  거실에 들어서는 남편 기세를 보니 뭔가 아니긴아닌가 싶다.

 
누웠는데 이래저래 잠이 안온다. 눕더니 새근새근거리다 금방 코를 고는 이 남자를 보니 숱한 생각이 교차한다..
내가, 그래 신발하나도 맘대로 못신나. 나이가 몇인데......
생각할수록 반품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만 새록새록 치민다.
잠시 방치했다가 잊을만하면 신을까, 안볼때 신으면돼지. 에잉 어쨌거나  난 못 바꿔.

 

남편은 잘도 잔다.
숨쉬기가 잘 안돼는지  일순간 숨을 뚝 멈추고 가만히 있는다. 행여나 싶어 흔든다. 오늘은 얼굴을 붙들고  깨지 않을만큼만  세차게 댓번 흔들어준다. 알턱이 없는 그는 다시 태평스럽게  코를 골며 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