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현관 벨이 울린다.
들어오시면서 명함부터 내밀며 인사를 하시는 분은 당근에서 몇 번 톡을 하고 시간을 정해서 방문하신
피아노 맨이시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성실해 보이는 인상의 키 작은 아저씨.
인사를 나누고 곧장 피아노 쪽으로 가셔서 건반을 눌러보며 가볍게 익숙한 멜로디로 연주하시고 피아노 뚜껑을 열어 보시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피아노 상태를 재검토를 하신다.
옆에 계시는 아버님을 보시더니 밝은 소리로 인사를 건네시는 피아노 맨에게 아버님이 웃으시며 인사를 받으신다.
성격이 좋아 보이는 피아노 맨은 아버님께 손주에게 피아노를 사 주신 거냐며 여쭈어보고는 아니라는 아버님의 대답에
한번 씩 웃는다.
그러고는 피아노 운반하려는 포즈를 취하려다 나에게 묻는다.
"혹시 제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을까요?"
"마지막 건반 두 개가 소리가 안 나요." 하며 손가락을 가리키니 꾹 눌러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시며
피아노를 가져갈 수 없단다.
why????
피아노는 건반 하나만 고장이 나도 전체 수리를 해야 한다며 주춤하시기에 나도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지난번에 오셨다 가신 피아노 맨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거의 날로 가져가려고 피아노가 오래돼서 가격이 안 나온다며 아주 헐값을 책정해서 그냥 두라고 했더니
갑자기 전화를 걸더니 영화 촬영소에서 피아노가 필요해서 잠깐 사용하고 처분한다며 인심을 쓰기에
그냥 팔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언성을 높이며 멀리서 왔기 때문에 기름값이라도 달라는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버님이 옆에 계셨기에 망정이지 나 혼자 있었다면 어쩔 뻔했을까....
그 생각에 나도 욕심을 버리고 아저씨가 고치는 비용에 조금만 얹어서 이야기를 하니까 아버님 얼굴을 보시더니
알겠다며 곧바로 이체를 해준다며 통장번호를 물었다.
혼자서 피아노를 옮길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또 한 번 웃고는 피아노 세팅기를 잠깐 잡아 달라더니
피아노를 옆으로 눕히는 거다. 오!! 신기신기
내가 건네는 주스를 단숨에 드링킹하시더니 잘 마셨다고 인사를 하시는 피아노 맨은 피아노를 가벼운 장난감을 끌고 가듯 엘리베이터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와 20년 이상을 함께 동거한 피아노인데 ...
아들과 딸이 피아노를 처음 대하며 도레미를 쳤었고, 나 또한 피아노가 있어서 피아노 연습을 하면서 피아노 학원도 다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아노와 점점 멀어지니 피아노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장식품도 너무 크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하루아침에 작별 인사를 하니 섭섭하지만
덩치 큰 피아노 자리가 비어있으니 마음이 가볍다.
좀 비우고 살자, 이번엔 또 무엇을 처분할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