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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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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BY 김정인 2015-08-06

방학이라  모처럼 쉬는 날, 은행 볼일보러 갔다가 비디오방에 들렀다. 

즐비하게 늘어선 DVD제목들을 보며 느끼는 건 난감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망설임없이 '남쪽으로 튀어'를 집어들었다.

아는 지인인 왈, 이 작품의 원본 시나리오는  일본 작가가 쓴 소설이며 자신은 영화는 보지 않았고 소설을 매우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다. 그러면 한번 볼만한데 싶었다.

여유롭게 go go ~ ~ ~

거의 1시간 반동안 나의 시선을 끈 것은 2가지였다.

 

첫번째는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을 것을 한번도 선택의 영역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감히 거기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당연히 받아들이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하여, 주인공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통쾌했다. 그것이 공적인 국가든 개인적인 어떤 것이든, 의문을 던지는 그 순간 우리는 짓누르고 갇혀 살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속에 있는 벌레가 꿈틀거려 못마땅한 건 안 하고 할말은 하는 행동으로  해 버릴 수 있으면  유쾌, 통쾌, 상쾌하겠지만, 나처럼 용기가 없는 소시민이라면  생각만이라도 절대 순응의 영역이라고 믿는 어떤 것을 상대 선택의 영역으로  넘긴다면 휠씬 혼자서 빙그레 웃는 날이 많지 않을까.

 

두번째는  최해갑의 부인이었다.

하루에도 몇번씩 파출소에 가고, 영화 찍는다고 짐보따리 싸서 집에 안들어오는 날이 많고, 걸핏하면 사람들과 싸워대고, 아이들과는 대화가 안 되고, 가장으로서 돈 못 벌어오고, 아이는 셋인데 첫째는 고등학교 그만두고 디자인 공부하고 둘째는 싸움해서 가출하고 등 주위에 무엇하나 희망을 주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 어떤 일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물론 같은 운동권 출신이라 기본적인 마인드는 이해하겠지만 이상과 삶은 다른 것이기에 삶의 고달픔은 아무리 좋은 이상도 쓰레기통에 쳐박게 된다. 특히 여자는 아내이기보다는 엄마이기에 더더욱.  남편을 그 자신의 이상대로 살도록 묵묵히 옆에 서 있는 그녀. 요즈음 내가 느끼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남편의 그 이상을 내 식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한발짝 더 나아가 그 위에 같이 서서 행동하는 것. 미친 짓처럼 보일 때가 많은데 어쩌면 반대편에 서서 욕한들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다.  영화에서는 같이 미치니 가정의 행복과 평화가 돌아 오던데, 현실에서는 어떨까? 

 

우리 집 옆에 최해갑이 산다면  욕을 바가지로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를 끝까지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한두가지를 지키기 위해 그 나머지 많은 것들은 과감히 내 던지고 남쪽으로 튀어버리는 그의 용기가 부러워서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