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는 아이들과 스승의 날을 준비하느라 난리를 쳤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편지지와 포장지, 선물을 사느라 부산을 떨었다.
엉뚱한 4학년 아들은 무슨 비밀이라도 된 마냥 선생님께 쓴 편지를 엄마에게 보일세라 황급히 숨겼고, 6살 딸은 삐뚤빼뚤 받침도 틀려가며 서투른 글씨로 감사함을 전했다.
스승의 날!
나에게도 한 스승이 있다.
아니 많은 스승 중에 생각나는 한 분이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학기초가 되면 의례히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었다.
그것이 몇 학년 때였던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지붕이 낮고 허름한 집.
엄마도 일 가고 아무도 없는 집에 선생님이 오셨다.
어린 나는 그런 선생님께 물 한그릇이라도 주었던가?
그렇게 어떨결에 선생님이 가시고 난 후 나는 왠지 모를 모멸감을 느꼈다.
나와 집을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눈은 측은함이었던가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곧장 교회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아마도 자기집 근처로 오라고 하신 것 같다.
선생님 집 뒤의 강둑에 앉아 나는 울었다.
서글픈 마음을 쏟으며.
그 때가 나에게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매번 쫓아내시는 아버지,
언제나 일 가시는 엄마,
점심반찬으로 김치만 싸 갔던 도시락,
내성적인 성격,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런데 처녀인 그 선생님은 나의 속내를 번번이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의지가 되던지.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이 생각나요. 어려운 시절 기도해 주시고 붙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자드립니다.'
'정인아, 고맙다. 이제 정인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나를 기억해 준 것 만으로 힘이 난다.'
근 15년만의 문자메시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승과 제자'로 끈이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