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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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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태어난 우리 아이의 죄


BY 김정인 2005-09-05

마음에는 가을이 온천진데 , 글소리는 항상 아이 , 남편, 꿈에 대한 얘기뿐이다. 하늘을 보면 너무나 파래 마음이 시려운데, 옆을 바라보면 온통 사람인지라 그런가보다.

오늘도 여전히 아이소리를 할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다.

올해들어 큰 아이와 나와의 전쟁은 치열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내가 서로를 알아가고 맞추어 살려니 어쩔수없이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이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꽤 요란하다. 형제없이 혼자 살기를 5년, 엄마 손에도 아닌 허용 수위가 높은 할머니 손에서 컸으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고 이해는 하지만, 요즈음 아이를 향해 부쩍 잔소리하게 되는 게 자기중심성이다. 물론 이 자기중심성은 자기 것만 눈에 들어와 남이 어찌 되었건 깡그리 잊어버리는 자연스러운 유아의 특성이다. 자기 것을 유난히 챙기는 2살 전후로 해서 조금씩조금씩 남의 입장을 고려하는 쪽으로 발달시켜야 할 중요한 발달과제 중의 하나다.

6세로 접어드니 아이들 중에도 자기 배려성이 남보다 뛰어난 아이와 자기중심성이 강한 아이의 윤곽이 나타난다.

 

오늘 옆집 아이와 있는 일이다.

우리 아이와 옆집의 동식이는 같은 해에 학교에 입학을 하지만 실제 나이에 있어서는 거의 1년의 차이가 난다. 옆집 아이는 2월생이라 초등학교 입학을 1년을 연기했고 우리 아이는 1월생이라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간다. 덩치만 보아도 한뼘은 차이가 난다.

우리 아이는 요즈음 그런 동식이랑 노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오후가 되어 둘이 사라져 버렸다. 3시쯤 나간 아이들이 어두컴컴한 8시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조금 있으니 우리 아이가 큰 형 두 명과 왔다. 무서워서 형들보고 데려다 달라고 했다고.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동식이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이 집 아이가 들어왔냐'고. '동식이가 어두운데도 우리 아이 찾느라 돌아다니다가 늦었고, 자기는 그런 동식이 찾느라 동네 3바퀴나 돌았다고 놀다가 편이 갈라져서 헤어져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이다.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기는 어두운데 형들이 자꾸 더 놀자고 해서 안 논다고 하고 어두우니 데려다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동식이를 찾으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못 찾겠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에레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어 혼자서는 에레베이트를 못 타는 동식이를 내버려 두고 왔고, 그 엄마는 혼자 오는 우리 아이를 보고 놀라서 동네를 허겁지겁 돌아다년던 모양이다. 나중에 저녁을 먹고 왠지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동식이 엄마 말은 자기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많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의 이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미안해야 하나?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동식이에게는 참 고마운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이가 미안해 할 필요까지야?

6살 아이가 무서워 친구 생각은 깡그리 잊은 채 달려 올 수 있다. 어쩌면 지극히 아이다운 행동일 수도.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다른 아이는 친구가 걱정되어 그렇게 했던지 에레베이터를 혼자 타는 게 무서워 그렇게 했던지 간에 친구를 찾아 헤메었다는 것이다. 그 어두움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요 유교의 영향을 많은 받은 우리 나라에선 남을 배려 잘하는 아이는 칭찬을 듣고 우리 아이같은 경우엔 자기 행동보다 더 심한 비난을 받는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기에 얼마나 예뻐 보이겠는가. 남에게 양보 잘하고 싸우지도 않고 말이다. 정말 칭찬 들을만하다.

나도 그랬었다.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면 엄청난 칭찬을 들을 수 있었으므로 칭찬에 신이나 무조건 그런 행동을 따라했다.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덕이므로 당연히 그렇게 해야된다고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어른들도 그러기에 당연히 그렇게 했다. 그런데, 매사에 그렇게 하다보니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남이 원하는 거랑 내가 원하는 것이 충돌할 때 심한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했고 결국은 남에게 그것을 양보해야지만 마음이 편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내 삶은 내가 원하는 쪽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져 갔고 나중에는 남의 것도 아닌 그러다고 내 것도 아닌 어중간한 인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최소한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욕구에 대한 만족이 없으면 남의 욕구 또한 온전히 존중 못하는 법이기에, 자기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부터 분명히 알고 난 다음에 남을 배려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 주위의 시선이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내가 말하기 전에 다른 엄마들이 먼저 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대하여 단죄했고 비난했다. 그러니 엄마인 나도 너무나 속이 상해 아이에게 이런저런 주의들을 주게 되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는 자기중심성이 늦게 발달하는 B형이었다. 자기는 재미있어서 하는 행동이 남을 괴롭히는 행동이 되고,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다른 집의 어린 아이가 갖고 싶어하면 양보 안 하고, 자기 것 빼앗기면 울고불고 난리나고 2살난 자기 동생이랑 자주 싸우고등 우리 아들은 지금 수난시대다. 무엇때문에 야단을 맞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항상 야단을 맞고 있다. 자기는 자기의 욕구에 충실했을 뿐인데, 왜들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다. 집 안에서 동생이랑 싸우는 거야 타이르면 되지만, 밖에서 다른 아줌마들에게 말을 듣고 오는 날이면 나도 속이 상하고 지도 속이 상한다. 나도 괜시리 다른 엄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속이 상하는 건 '자기중심성'이란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우리 나라에서만은 과도하게 죄악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키가 조금조금씩 자라가 듯 마음도 조금조금씩 자라가고 개인차가 있는데 천편일륜적으로 어른의 시각에서 성급한 판단을 해 대니 아이들이 어떻게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아갈 수 있을까!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자기중심성이 자기 이익을 위해 뻔히 알면서도 남을 교묘히 이용하는 이기주의로 가지 않도록  모범을 보여야 하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자기 것을 지키고 사는 건전한 개인주의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하며 나아가서는 자기의 울타리를 넘어서 더불어 사는 남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에까지 닿을 수 있도록 밀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