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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세 송이


BY 김정인 2005-08-23

요즈음 들어 남편의 귀가가 늦다.

굳이 어디갔다 왔느냐고 몰아 세우지도 않는다.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회사에 손님이 와서 늦게까지 일하다가 외박을 한 것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오늘도 전화 한 통없이 늦다.

아이들과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현관문을 따는 소리가 들린다.

활활 타는 마음을 확 퍼부어 버릴까? 들어오든 말든 모른척 할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를 할까? 결단을 못 내리고 엉거주춤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아빠를 향해 달려가며 스스럼없이 안긴다.

남편은 달려드는 딸아이를 고이 내려 놓고는 손에 든 코스모스 세 송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한송이는 나에게, 한송이는 아들녀석에게, 한송이는 딸아이의 귀에 꽂아준다.

얼마만의 꽃이던가.

기념일에도 꽃 한송이 선물하기 힘들어 하는 그이건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걸까?

남편의 들어 온 모양새를 보면, 한손에는 젖은 양말이 든 비닐봉투, 한손의 손가락 사이로 간신히 든 어항에 넣을 수초가 든 비닐봉투, 그리고 그 움켜 진 손아귀 속에 세송이의 꽃이 붙들려 있었다. 아주 소중히.

외박 이후로 트집잡아 옥신각신 소리없는 신경전을 며칠했는데, 고작 가지 짧은 코스모스 세송이와 밥이 너무 맛있다는 말로 떼우려 한다.

받아줄까? 말까?  

정말 남는 거 하나없는 장사건만, 오늘도 나는 예쁜 것만 보면 사죽을 못 쓰는 16개월된 딸 아이마냥 배시시 웃고 말았다.

 

 

등록
  • 박엄마 2005-08-24
    멋진 장사 인데요... 멋진 성공이구요 행복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사람 사는 지지고 볶은 내음이 솔솔 풍깁니다
  • 산골향 2005-08-24
    행복하단 비명으로 들립니다..계속 행복하시길....
  • 밥푸는여자 2005-08-29
    때론 걍~ 넘어가 버리는 것도 깜찍한 지혜^^
  • 김정인 2005-08-31
    그렇지요? 그냥 넘어가 주니 집안이 편안하긴 편안합니다. 박엄마님, 산골향님, 밥푸는 여자님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요즈음 길가 코스모스가 너무 예쁘지요? 한송이씩 선물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 김학수 2006-03-07
    선생님의글 모두잘 읽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좋은글들을 (참좋은사람)이란책에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원고료는 없지만 책이나오면 2권을 선생님에게 보내드립니다.
    제메일과 전화번호를 남기니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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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 jeongsun0@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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