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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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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장님


BY 김정인 2005-02-26

아이를 등짝에 붙이고 버스를 타고 아이의 수료식에 갔다.

아이의 선교원은 교통이 불편해 한코스나 걸어가야 했다.

겨울이 혼자 가기가 아쉬워 어문 나에게 칼바람을 쏘아댔지만, 악착같이 걸은 덕분에 11시가 조금 넘어서 수료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식장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원장선생님과 아이들의 귀에 하나라도 더 좋은 말씀을 집어 넣으려는 교장선생님이 계셨고, 그 앞의 마루바닥에선 아이들이 눈치껏 놀고 있었다.

졸업식이 다 그렇듯이 가장 예쁘고 똑똑한 아이들이 나와 송사와 답사을 하고, 1년동안 출석을 잘 한 아이에겐 개근상을, 저축을 많이 한 아이에겐 다액상을, 손재주가 비상한 아이에겐 으뜸상이 주어졌다.

우리 아들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나도 학창시절에 항상 밑에 앉아있었는데 뭐.'

당연한 일인데도 왠지 서운했다.

식을 마치고 각자의 교실로 들어가 수료증을 받는 시간.

유치원의 수료식은 너무나 간단하여, 아이를 들쳐업고 카메라를 들고 선생님의 선물과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 교실을 찾아 갔을 때는 벌써 아이들은 집에 가려고 옷을 입고 있었다.

아이가 나를 보고는 쪼르르 달려왔다.

엄마!

그리고 멘 가방을 떡 하니 열더니 자랑스럽게 상장을 내밀었다. 

원에서는 아이들 모두에게 어울리는 상을 한가지씩 주었던 모양이다.

창의상!!!

다 받는 것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어쩌면 이렇게 각자에게 걸맞는 상을 주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에겐 그 아이만의 재능이 있을테니.

운동을 잘 하는 아이, 말을 잘 하는 아이, 율동을 잘 하는 아이, 만들기를 잘 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을 잘 배려하는 아이등.

물론 이걸 설치는 아이, 시끄러운 아이, 돋보이려고 기를 쓰는 아이, 손을 한시라도 가만히 안 두는 아이, 자기 것 챙길 줄 모르는 아이라고 보면 상 줄 일은 하나도 없겠지만.

눈을 부릅뜨고 내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 주는 것, 아니 단점마저도 장점으로 우기는 배짱이 부모들의 몫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작년에도 아이는 다른 선교원에서 과학상을 받아왔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단지 너무 설쳐서 운동상을 안 받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항상 믈럭을 가지고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드는 아이를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닐성싶다. 누가 아는가. 나중에 우리 아이가 에디슨이 되고 아인슈타인이 될지.

그것도 모르고 방 어지럽힌다고,

자다가 이불 밑에 깔린 블럭조각이 등을 찌른다고,

어렵게 완성한 작품을 동생이 허문다고 속상해하면 대수롭지 않게 다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다른 블럭 사달라고 조르면 돈 없다고 무식하게 냅다 소리지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블럭을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지에는 전혀 관심없고, 그 믈럭이 제자리에 정리정돈이 되나 안되나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엄마였다.

아이는 매번 자기의 소질을 넘치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엄마는 장님이었다.

오늘은 밤 10시까지 온 방 가득 블럭이다, 장난감이다.

그래도 내 마음이 이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내 아이에게도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다는 것이  이리도 마음을 부하게 할 줄이야.

아이를 믿는다 믿는다하면서 실제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옆집 엄마가 아이에 대해 투덜거릴 때는 " 그 집 아이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뭐가 걱정이고." 잘도 말하면서, 정작 내 아이에게는 못하는 것만 눈을 감고도 술술 말할 줄 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고, 너무 사랑하기에 내 아이에게만 유독 장님이 되나보다.

열정이 넘쳐 아이의 장점을 못 보는 장님이 세월이 흘러흘러 가면 자식이 세상의 모진 풍파 맞고 내 어깨 위에 기댈 때 그 허물보지 않고 하늘같은 마음으로 안아주는 자식을 위한 진정한 장님이 되어 가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