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란 책을 읽고, 또 읽고.
유럽의 어느 무겁고 어두운 지방의 구석에 들어가서
혼자 외롭게 사는 게 꿈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그 후에도 지속된 그 꿈이…
유럽이 아닌,
무겁고 어두운, 지방이 아닌,
한겨울에도 수시로 주책없이 햇볕이 만개해 버리는 도시에서.
혼자서 외롭게가 아닌, 세 남자들과.
아직도 그 꿈의 부스러기들이 남아 있어.
내가 좋아하는 안개비가 오는 날.
평소에 즐기지 않던 커피 한잔과 함께.
지금은 절대로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1950년대 말 유럽의 어느 회색 도시의 분위기를 찾아 가고 싶다.
내가 절망해 버린 나의 능력과 재능의 부족함으로,
내 일들을 포기했다 한들,
그에 대한 미련이, 꿈이,
아직도 나에게 남아 있어,
그리하여 내가,
작고 보잘것 없는 나의 능력안에서,
초가 삼간이라도 짓고 싶은,
오래전 내 일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는지,
오래 오래 전부터 자기 일들을 사랑하던 이들의 결정체를,
가슴 저리게하는 그 많은 꿈의 형체들이 살아 있는 곳에서,
내 눈으로 한 번 직접 보며,
내 손으로 한 번 직접 만져 보며,
내 발로 한 번 직접 걸어 보며 확인 하고 싶다.